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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작성일 : 21-07-25 14:51
참된 축복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535  
참된 축복 (요한계시록 1:9-11)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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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디 목사의 교인 중 한 사람이 양조장을 크게 짓고 개업을 하기 위해
무디 목사를 초청해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양조장 사업이 번영하게
해 달라는 의도가 있었겠지요.
무디 목사는 설교 후 축도 순서에 앞으로 나가 두 손을 높이 들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오! 하나님, 이 양조장이 내일 문을 열기 위해 오늘 예배를 드렸습니다.
주께 기도하오니 이 양조장 문이 내일 열리지 않게 해 주옵소서.
이 문이 열리면 엄청난 술이 생산될 것이기 떄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수많은 청소년들이 이 술을 마시고 타락하게 될 것이고,
또 수많은 사람들이 이 술로 인해 취해 정신을 잃을 것입니다.
오! 하나님이시여! 제발 오늘 밤 이 주인의 마음을 감동시켜 주시어서
이 양조장 문이 열리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이러한 기도를 마치고 예배가 끝났을 때 주인은 분을 삭이기 힘들었고,
참석한 많은 사람들도 크게 곤혹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예배를 마친 뒤 개업축하파티를 하려던 사람들은 서둘러 자리를 빠져
나갔습니다.
양조장 주인은 그 목사를 원망하는 마음과 함께 불안한 마음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를 초청한 것 자체를 후회하면서 그날 밤 한숨도 잘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그는 새벽이 되자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기도 중에 그가 하려는 사업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양조장 문을 열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양조장 건물을 주의 영광을 위해 사용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다음날 양조장 개업은 취소되었습니다.
그후 그 건물은 후일 무디 신학교의 건물이 되어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양성하는데 쓰여지게 된 것입니다.
이 일은 참된 축복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참된 축복의 원리를 살펴보겠습니다.

1. 주님의 고난에 참여할 때 축복은 주어집니다.

사도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다가 붙잡혀 밧모섬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습니다.
지중해의 에게해 연안에 있는 조그만 밧모섬은 거의 무인도나 다름없는
척박한 땅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 순교 당하고 오직 요한 자신만 남았는데,
그는 귀양을 가서 외롭고 고독한 땅이지만 더욱 하나님과 가까워졌고,
그의 영의 눈은 열려 미래의 일어날 일들을 보고 요한계시록을 기록하는
위대한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본문 11절,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이 말씀에서 형제 자매, 성도의 정의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 안에서 형제 자매란 예수님의 환란, 예수님의 나라, 예수님의 참음에
동참하는 자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형제 자매이고, 성도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무엇일까요?
어떤 분은 신앙생활 하면서 세상적인 축복을 많이 받은 것이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성도라는 참된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성도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예수님의 환난에 동참하고,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하고, 예수님의 인내에
동참할 수 있어야 성도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희생의 길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가복음 9:23).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예수 믿기 때문에 따르는 손해를 감수하고 희생을
짊어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십자가를 질 때 우리에게 진정한 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통과하여 부활의 영광에 들어가셨듯이,
우리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때 부활의 영광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No Cross, No Crown, 십자가 없이는 영광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동참하는 것이 참된 성도이고, 그것이 기독교이지,
십자가에 동참이 없이 세상 복만 구하는 것은 결코 기독교가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기복주의이고 무당 종교인 것입니다.

독일에 서독과 동독을 가르는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기 전 270만의
동독인들이 자유를 찾아 서독으로 이주했습니다.
1954년 수많은 인파가 구름처럼 서독 쪽으로 이동을 합니다.
그러나 서독에서 동독으로 가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고
오직 한 가족, 서독 출신의 ‘호르스트 카스너’(Horst Kasner) 목사는
이 와중에 가족을 데리고 동독으로 넘어갔습니다.

많은 목회자가 동독에서 서독으로 계속 넘어오기 때문에
서독에는 목회자가 넘쳐나고 있지만,
동독에는 목회자 기근이 들어 수많은 영혼들이 방치되고 있었습니다.
카스너 목사는 서독에서 남부럽지 않은 안정된 생활을 했지만
하나님 앞에 바른 삶을 고민하던 그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리하여 가족과 함께 그때 겨우 6주 된 간난 아기를 품에 안고
교회도 없는 공산치하인 동독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당시 아버지의 품에 안겨 동독으로 갔던 목회자의 딸은
아버지의 엄격하고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세월이 흘러,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서독과 동독은 그 이듬해 통일이 되었고,
주님의 뜻대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동독으로 갔던
그 목사의 딸은 잘 자라서 통일 독일의 총리가 된 것입니다.
그녀의 이름이 ‘앙겔라 메르켈’ (Angela Merkel) 총리입니다.

그녀는 기독교 민주연합의 의장으로서 독일 총선에서 승리하여
2005년부터 4선을 연임하며 총리로서 통일 독일을 16년 동안 이끌어
온 것입니다.
소박한 시골 교회에서 자란 소녀가 통일 독일의 최고지도자가 되어
유럽의 경제위기 극복과 유럽의 난민문제 해결, 그리고 전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개혁을 이끌어 독일이 유럽의 최강국으로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2015년 '타임지‘에 그녀는 '자유세계의 총리
(Chancellor of the Free World)'라는 이름으로 '올해의 인물'에
선정될 정도로 메르켈은 독일국민뿐 아니라 세계인에 의해 존경받는
인물이 된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와 그의
자녀에게 놀라운 축복으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그 지는 십자가가 크면 클수록 그 축복은 더 커지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때에 부활의 영광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2. 주일을 성수할 때 축복이 주어집니다.

본문 10절 말씀입니다.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여기 ‘주의 날’은 주일날을 의미합니다.
사도 요한이 혼자 주일날 고독하고 쓸쓸한 무인도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성령의 감동 속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계시를 보여 주실 때 여러 날 중에 주일날에
계시하신 것을 보면 주일이 얼마나 중요한 날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십계명의 제 4계명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명령한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을 가장 중요시하여 그들은 생명을 걸고
안식일을 지켜온 것입니다.
그 안식일의 개념이 신약에 와서는 주일의 개념으로 바뀌었습니다.
주님께서 주일날 부활하셨고,
성령이 강림하신 날도 오순절 주일날이었습니다.
그 후로 초대 교회는 안식일(토요일) 대신 주일날(일요일)을 예배드리는
날로 정하고, The Lord's Day, 주일날 함께 모여 예배드리며 주일을
지켜온 것입니다.

주일은 지난 한 주간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신령한 복과 은혜와 힘과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일을 힘써 지키는 삶보다 복된 삶은 없습니다.
우리는 주일 예배를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주일 성수는 인생 최대의 축복을 얻는 가장 기본적인 비결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교회에 모이지 못하고 쥼으로 예배를 드리지만
이런 힘든 상황에서도 우리는 주일을 지키며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주일날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에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주일은 나의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주의 날을 만드신 것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출20:11).

서울의 흑석동 어느 교회에 한 장로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운수 회사에서 일을 하였는데 성실하여 회사에서도 인정받고,
수입도 괜찮아 가정생활에 어려움이 없었고, 교회에서도 교인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직장에서 가끔 주일날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주일성수를 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셨고 안식일을 지키면
큰 축복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주일을 성수하지 못하는 장로가 무슨
축복을 받을 수 있나?’하고 고민 끝에 사표를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막상 사표를 내려고 하니까 처자식이 생각나고 ‘앞으로 어떻게 살지?’
하는 생각에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 후에
하나님께서 앞날을 책임져주실 것을 믿고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사직서가 수리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사장실로 오라고해서 들어갔더니
사장이 묻습니다.
"김 선생, 왜 사표를 냈습니까?"
"죄송합니다. 부득이해서 할 수 없었습니다."
"부득이한 이유가 대체 무엇이요?"
"예, 저는 교회 다니는 사람입니다. 주일을 꼭 지켜야 해서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직장이 있습니까?"
"아니요. 아직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겠지요."
"그러면 주일은 쉬고 서로 협력하면서 함께 일을 합시다" 하면서
사표를 되돌려 주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앙으로 살려고 애쓰며 힘써 주일을 지키는 자에게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전도서 7:13-14,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 일을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주일을 힘써 지키며 예배드릴 때,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도 해결해 주시고 반드시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놀라운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비밀이며 축복의 비결인 것입니다.

3. 교회를 사랑할 때 축복이 주어집니다.

본문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본문에 나오는 일곱 교회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전체 주님의 교회를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의 계시가 교회에 대한 내용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역사의 중심에는 교회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의 중심에 교회가 있을 때,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찬송가 208절 2절 보면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내 주의 교회는 천성과 같아서 눈동자같이 아끼사 늘 보호하시네"
하나님은 교회를 눈동자같이 보호하시기에 그 안에 있는 성도도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고 헌신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놀라운 축복을
부어주시는데 그 축복을 받은 수많은 사람들의 간증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여러분, 정말 교회를 사랑하고 아끼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을
합시다. 그래서 생각지 못한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놀라운 축복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사도 요한과 같이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자들이 됩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주일 예배를 드리고 주일을 성수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교회를 진정 사랑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참된 축복을 받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