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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광장

 
작성일 : 15-05-08 01:38
어느 인생 스토리(9)
 글쓴이 : 오금택
조회 : 12,130  

옛말에 ‘70세를 사는 사람이 예로부터 드물다’(人生七十古來稀)는 말이 있습니다. 의학(醫學)이 발달하지 못한 옛날에는 70세가 된 어른을 찾아보기 힘들었으므로, 그 당시에는 나이가 60세가 되어도 큰 경사(慶事)로 여겨서 자식들이 그의 부모를 위해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자식들은 자신들을 낳아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순서대로 큰절을 올리고, 부모님께서 행복하게 더 오래 사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술잔을 올리는 예식을 행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평균수명이 길어져 고령화(高齡化) 시대를 맞게 되면서 환갑잔치를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고, 칠순이나 팔순이 되어 잔치를 베푸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춘자 자매님이 지난해에 환갑잔치를 크게 열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처럼 환갑에는 여행이나 하시고 칠순(七旬)이 되거든 잔치를 하라고 권했지만, 본인의 생각과 상관없이 자식들이 해 드리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어머니의 살아오신 인생을 생각하면 지금까지 살아오신 삶이 기적이며, 그 삶을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70세까지 어머니가 사실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자식들을 키우시느라 힘들게 살아오신 어머니께 자식들의 감사를 표현하는 잔치를 베풀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초대 손님들이 교회 식구들이 될 텐데, 교회에는 70세 80세를 넘기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 나이 많으신 어른들을 모시고 젊은 사람이 환갑잔치를 한다는 사실이 그렇게 덕(德)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말들도 들려왔습니다. 더구나 춘자 자매님은 나이에 비해 아주 젊게 보입니다.  아마 늘 감사하며 기쁘게 살아가는 그의 삶의 자세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젊은 목사님이 쉽게 그 일을 주관(主管)하기를 꺼려하셨습니다.


양쪽 얘기들이 모두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부부가 나서서 그 일을 추진하고, 우리와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어느 젊은 집사님이 행사를 계획하고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큰 뷔페(buffet)식당의 별관(別館)을 빌리고 개인적으로 손님들을 초대하였습니다. 남들을 도와가며 발이 넓게 살아온 춘자 자매님에게 150명 정도의 수용능력을 가진 장소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초대 손님을 최소한으로 줄이도록 노력했습니다.  나이 많으신 어른들을 주로 초대했는데, 나이에 관계없이 입소문을 통해 여러 교회에 다니시는 많은 분들이 찾아오셨습니다. 서너 살 되는 꼬마들도 많았습니다. 그들은 춘자 자매님이 교회에서 행사 때마다 돌보아 준 어린애들인데, 그 부모들이 어떻게 알고 찾아온 것입니다.


한복(韓服)을 곱게 차려 입고 즐거운 표정으로 행사장에 나타난 춘자 자매님은 환갑을 맞는 사람과는 아주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환갑잔치를 하는 노인이 아니라, 자기가 결혼을 하는 신부(新婦)인 줄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평소에도 그러했지만, 그날은 머리 손질도 하고 화장(化粧)까지 해서 마치 나이 많은 신부가 시집을 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참석한 많은 사람들이 놀리느라 한 마디씩 해도 그의 들뜬 기분을 가라앉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잔치는 언제나 즐거운 법입니다. 


토요일 낮이라서 식당에 손님들이 붐비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유리창으로 칸막이가 되어 있는 별관에서는 찬양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조용히 피아노(piano)를 통해 흐르는 소리가 아니라, 150여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은혜를 감사하며 찬양하는 열창(熱唱)이었습니다. 식당의 다른 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하시던 손님들이 주위에 우르르 몰려들었습니다. 무료하게 식사를 하고 있던 그들에게 구경꺼리가 생긴 것입니다. 그 자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즐기는 찬치의 모습을 세상에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몇 곡의 찬양을 부른 후에, 목사님께서 하나님 말씀을 간단히 전하시고, 지금까지 춘자 자매님을 붙들어 주시고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祈禱)를 드릴 때에는 모두가 아멘(amen)으로 화답(和答)했습니다.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춘자 자매님의 삶의 여정(旅程)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간단한 예배가 끝나고, 이어서 찬양을 부른 후에 가족들의 간증시간이 이어졌습니다. 큰딸이 먼저 나와서 길게 적어온 간증문(干證文)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옛말에 큰딸은 집안의 살림 밑천이라고 했던가요?  엄마와 함께 어려운 살림을 가장 많이 경험해 온 큰딸은 글을 읽으면서 가끔씩 멈추었고, 한참을 울먹인 후에 다시 시작하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인 줄 알았던 딸이 엄마의 사정을 다 알고 있었다며, 춘자 자매님은 눈가에 손수건을 자주 가져갔습니다. 참석한 모든 분들의 마음도 같았나 봅니다. 이어서 다시 찬양하는 얼굴들에 눈물자국이 보이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스스로는 어찌할 수 없었던 죄인(罪人)을 살리셔서 새 생명을 주시고 이렇게 풍요한 삶을 살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너무나 놀라웠습니다.


춘자 자매님의 말에 의하면, 작은딸은 아주 자상(仔詳)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엄마와 가장 많이 대화를 하는 사이라고 합니다. 춘자 자매님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는 먼저 작은딸에게 전화를 한다고 합니다. 그 작은딸이 엄마의 힘들었던 인생을 얘기할 때에는 어떤 기록 영화를 보는 듯했습니다. 특히 엄마와 자기들을 버려두고 떠난 아빠에 대한 원망을 얘기할 때에는 그의 눈에서 계속 눈물이 흘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을 떳떳하게 키워주신 엄마의 삶의 자세를 얘기할 때에는 엄마와 하나님에 대한 감사를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그 딸도 이제 두 아이들을 키우면서 엄마의 마음을 조금씩 알아가는 듯했습니다. 만일 자기에게 지금 남편이 없다면 엄마처럼 그렇게 살아갈 수 없으리라고 고백하며, 그는 엄마와 함께 살아가면서 한 여자가 아닌 어머니의 힘이 얼마나 강인(强忍)한지를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엄마, 사랑해요”라며 얘기의 끝을 맺는 작은딸의 말을 들으며, 춘자 자매님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울먹이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자식들이 자랑스러울 것입니다.


분위기를 수습하려는 듯, 사회자가 찬양을 다시 시작합니다. 나 같은 못난 인간을 살리시려고 주님은 하늘의 영광보좌(榮光寶座)를 모두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천하고 천한 종의 형상을 입으셨습니다. 아, 이 주님의 사랑을 어디에 견주겠습니까? 이제는 사랑의 하나님이신 예수님만 나의 자랑으로 삼고, 나의 남은 인생길을 주님과 함께 걸어가면서 예수님의 복음(福音)을 위해 굳세게 살겠습니다.  

 

춘자 자매님뿐만 아니라, 목청을 돋우어 찬양하는 그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의 가슴은 이런 소원(所願)을 담은 열정으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내용 중에 복음성가의 가사 일부를 인용했습니다.)  (계속)


관리자 15-05-09 07:10
 
의미있는 환갑찬치 입니다.
은혜로운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