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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광장

 
작성일 : 14-08-07 10:20
기독교가 동네 개 처럼 되었다(손봉호 교수)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9,032  

한국교회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기간에 성장했습니다. 교인수가 더 많은 나라가 있지만, 교회 규모로만 보면 한국교회는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새벽예배도 다른 나라에는 없는 한국교회에만 있는 제도입니다. 한국교회의 성도들은 정말 열심히 기도합니다. 헌금도 많이 합니다. 교인들이 헌금 하는 금액을 따져보면 수입의 거의 25% 정도에 이릅니다. 이런 부분은 한국교회가 지켜가야 할 좋은 유산입니다.

 

사회 지도층을 보면 판사와 검사의 상당수가 기독인이고, 국회의원도 3분의 1 이상이 기독교인입니다. 우리인구의 19%가 개신교인인데, 국회의원의 3분의 1이 기독교인이라면 지식층일수록, 또 사회 수준이 높으면 높을수록, 경제 수준이 높으면 높을수록 기독교인이 많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한국의 종교는 기독교라고 말해도 될 정도입니다.

 

그러나 최근에 기독교의 성장이 수적으로 후퇴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노력하는 데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의 수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기독교가 사회적으로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나 기관이나 어떤 문제를 취급하는 방식을 보며 재미있습니다. 어떤 개인이 흠도 있고, 잘못도 있고, 약점도 있지만, 그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으면 함부로 욕을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 욕할 때 사회분위기가 그게 무슨 소리냐 이렇게 말하면 욕하는 사람이 이상한 취급을 받기 때문에 말을 함부로 못합니다. 한때 우리 기독교가 그랬습니다. 우리 기독교가 사회에서 압도적으로 존경을 받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라고 해서 왜 기독교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그런데 당시에는 사람들이 터놓고 기독교 비판을 못했습니다. “기독교가 우리나라를 위해서 얼마나 큰 일을 했는데 기독교인이 우리사회를 위해서 얼마나 중요한 일을 했는데...”라고 하면 감히 기독교에 대해서 말을 못했습니다.

 

20여 년 전에 한국교육개발원의 원장인 분을 사석에서 만났는데, 그런 이야기를 해요. “나는 교회를 다니지 않지만, 아이들은 모두 교회를 보낸다. 아이들이 교회에 다녀야 인간이 된다.”보통 사람이라면 몰라도 우리나라의 교육의 최고 수장이 아이들 교육을 제대로 시키려면 교회에 보내야 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게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럼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가? 이런 말을 하면 그렇지만, 지금은 기독교가 동네 개처럼 되었습니다. 주인 없는 개가 동네를 돌아다니면 아무나 걷어차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은 사람들이 마음 놓고 기독교를 욕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최근의 상황을 보면 거의 유명한 사기꾼들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기독교인입니다. 부산저축은행 로비로 감옥에 들어간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도 서울의 모 교회의 집사입니다. 벤처여검사 사건과 관련된 문제를 일으킨 여자가 있는데, 외모도 잘 생기고 국립대에서 수석으로 입학하고 수석으로 졸업할 정도로 똑똑했습니다. 그런데 거짓말과 불륜, 도둑질에 온갖 나쁜 짓은 다 했는데, 교회 기도회에 그렇게 열심히 참여했다고 합니다. 이게 한국교회의 상황입니다. 최근의 한기총 사태, 영화 도가니, 밀양, 큰 교회목사들의 스캔들, 그리고 각종 교회 소송 때문에 판사들이 교회라면 아주 진절머리를 칠 정도의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기도도 열심히 하고, 성경도 열심히 보고, 전도도 열심히 하는데, 왜 한국교회가 이렇게 되었을까요? 교회의 실패를 한 마디로 말하면 윤리적 실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복음의 수평적 혹은 수직적 관계에 대해 말하는데,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는 문제가 없는데, 사회 혹은 이웃과의 수평적 관계는 완전히 실패한 것입니다.

 

"한국교회 약하는 윤리적 실패 때문"ⓒ더보이스 

 

한국교회가 이렇게 약화된 이유는 한 마디로 윤리적 실패 때문입니다. 윤리적 실패란 무엇입니까? 성경대로 살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은 믿는데, 성경대로 행하지를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엄격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셨습니다. 말하고 믿는 것만으로 안 되고 행하는 자라야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행하는 것을 강조하지 않고, 행하는 것을 강조하는 사람을 율법 혹은 의로 구원받는 이단적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국교회는 윤리를 강조하는 사람을 자유주의자로 생각합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을 강조해야지, 윤리적인 것을 의로 구원을 받는 것은 기독교의 구원론에 어긋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온갖 문제를 일으킨 사람도 믿음으로 구원받는 다는 것 때문에 누구나 교회에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근본적으로 성경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왜 잘못 이해합니까? 잘못 이해하면 편하기 때문입니다. 잘못 이해하면 돈 벌기도 편하고, 교회 신앙생활하기도 편하고, 모든 면에서 편합니다. 말씀대로 살라고 하면 사람들이 교회에 오겠습니까? 부자들이 교회에 오겠습니까? 한국의 상황에서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과거에 부정을 저지르지 않고 돈벌기가 힘들었습니다. 돈을 뿌리지 않으면 정치 지도자가 되기도 힘들었습니다. 온갖 부정을 저질러야만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 목사님이 잘못했다고 하면 교회에 오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게 하려면 아 그거 괜찮다. 하나님은 다 용서하신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회개라는 것을 성경적으로 근본적으로 오해해서 말만 가지고 “잘못했습니다” 하고 회개하면 죄가 용서받는 것처럼 가르쳐 놓아서 오늘날 돈과 명예와 권력을 너무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면 예수처럼 돈을 못 벌고, 예수님처럼 명예도 얻지 못하고, 예수님처럼 권력도 누리지 못하고 핍박을 받는 것이 바로 기독교의 십자가의 종교인데, 그것은 완전히 없어져 버렸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건강하고, 돈 잘 벌고, 출세하고 권력을 누리고 된다는 것만 계속 강조하고 그걸 강조하니까 교인들이 구름 떼 같이 몰려들고, 재미있거든요. 이런 상황이 오늘날 한국교회를 이런 지경으로 몰고 왔습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지난해 11월에 한국교회의 신뢰도에 대한 조사를 했더니 우리 국민의 17.6%만 개신교를 신뢰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2009년에 18.4%였고, 2010년에 19.1%였는데, 해가 갈수록 자꾸만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41.4%가 신뢰한다고 했고, 불교는 33%가 신뢰하고, 기독교는 17.6%만 신뢰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왜 한국교회가 이렇게 되었을까요?

 

근본적인 원인은 기독교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자연종교, 사람의 상식, 사람의 지혜, 사람의 깨달음으로 가능한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계시의 종교입니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는 우리가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이 세상의 그런 원칙을 가지고 설명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생각이 비슷하다면 왜 계시가 필요하겠습니까? 사람의 생각 가지고는 안 되기 때문에 계시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세상의 논리와 다른 종교입니다. 세상과 다를 수밖에 없고 달라야 합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했을 때를 보십시오. 사사기에 그런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타락했을 때는 꼭 이방종교에 빠집니다. 이방종교에 빠지는 것이 타락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큰 벌을 주면,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이방종교와는 거리를 둡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또 이방종교에 빠집니다. 이것이 계속 반복됩니다. 한국종교가 지금 이방, 말하자면 우리 주위 세상과 너무 비슷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 빠진 것입니다.

 

그러면 한국사회는 어떻습니까? 재미있게 한국사회와 한국교회가 아주 비슷합니다. 한국교회가 기도도 열심히 하고, 전도도 열심히 해서 엄청나게 빠르게 성장한 것처럼, 한국사회도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한국사회는 60년 만에 절대빈곤에서 탈출해 빠르게 성장해서 원조 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과거 일제 식민지와 독재의 혹독한 시간을 보냈지만, 한국은 지금 아시아에서 가장 자유로운 나라가 되었습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우리가 60년대에 당신들하고 비슷한 나라였다는 말에 무척 놀랍니다. 그들은 한국처럼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해마다 유엔이 각 나라의 경제수준, 교육수준, 어린아이 사망률, 문맹률을 종합해서 ‘인간개발지수’를 발표합니다. 유엔이 2011년 4월에 발표한 인간개발지수를 보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15번째로 인간개발지수가 높은 나라라고 발표하였습니다. 덴마크가 우리보다 한 단계 낮은 16위입니다. 프랑스는 20위, 싱가포르가 26위, 영국이 28위입니다. 어떻게 해서 우리 나라가 이렇게 지수가 높을까요? 일단 한국은 문맹률이 낮습니다. 의학기술이 세계적으로 톱 클래스입니다. 그래서 유아 사망률이 낮습니다. 인간개발지수는 그 나라가 선진국인지, 후진국인지를 결정하는 요소입니다. 인간개발지수만 보면 우리나라는 프랑스나 영국보다 더 선진국입니다.

 

몇 달 전에 영국의 메가티브 연구소가 번영지수를 발표했는데, 우리나라가 24번째입니다. 유엔의 인간개발지수보다는 낮지만 우리나라는 아주 괄목할만한 성장을 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최근에는 예술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데, K-POP의 경우 많은 나라에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도 세계에서 7,8위이고, 대학진학률, 문자를 읽을 수 있는 수치도 단연 세계 1위입니다. 이런 수치를 보면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모든 면에서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데, 딱 한 가지 뒤떨어진 것이 도덕수준입니다.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독일에 있는 국제투명성기구라는 연구소가 해마다 그 나라의 투명성 지수를 발표하는데, 우리나라가 43위라고 발표했습니다. 경제수준이나 다른 부분에 비교하면 도덕적 수준은 무척 낮습니다.

영국의 레가툼 연구소는 우리나라의 도덕수준이 110개 중에서 80위권 쯤 된다고 했습니다. 이런 정도면 완전히 후진국 중의 후진국입니다. 아프리카의 보츠와나라는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는 투명성지수는 32위입니다. 아프리카의 보츠와나가 우리보다 11위나 높다는 것이 상상이 됩니까? 우리 한국교회하고 한국사회하고 아주 비슷합니다. 한국사회는 경제, 교육, 보건 등 많은 부분에서 뛰어난데, 도덕적 수준에서는 형편없습니다. 한국교회도 기도, 전도, 말씀에는 열심인데, 도덕수준은 형편없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한국교회가 한국사회를 닮아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왜 이렇게 도덕적 수준이 낮을까요? 경쟁해서 성취할 수 있는 것에서 한국은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경쟁은 함축하는 것은 내 이익입니다. 돈을 벌고, 더 좋은 위치에 올라서는 것은 경쟁을 해야 얻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윤리에는 경쟁이 없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정직해야 한다고 경쟁하는 것을 보았습니까? 윤리는 비경쟁적 영역입니다. 우리는 경쟁과 관계없는 것, 특별히 다른 사람의 이익과 관련된 것에는 형편없습니다. 경쟁은 내 이익이 전제된 것이고, 비경쟁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이익과 관련된 것, 즉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 다른 사람을 기분 나쁘지 않게 하는 것 이 쪽에는 형편없습니다. 내 이익 보는 것, 즉 내가 잘 되고, 내가 돈 벌고, 내가 건강해지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이게 한국인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세계에서 돈 욕심이 가장 강합니다. 우리는 경쟁에는 집착하지만 경쟁과 관련 없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윤리적으로 뛰어나면 경쟁에서 손해를 보기 때문입니다.


※ 이 기사는 새벽이슬교회에서 <한국교회의 반성과 새로운 도전>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강의를 정리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