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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작성일 : 21-08-09 03:42
주께서 원하시는 것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399  
주께서 원하시는 것 (미가 6:6-8)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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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 속에 멧돼지 한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배가 고픈 멧돼지가 하루는 먹이를 찾아다니다 도토리나무 아래
땅바닥에 도토리들이 많이 널려있는 것을 보고는 정신없이 주워 먹고,
그래도 성이 차지 않아 낙엽을 파헤쳐 보니 거기에도 도토리 알들이
나왔습니다. 이 멧돼지는 땅 속에서 도토리가 나오는 줄 알고
도토리를 찾아 땅 속을 파헤치기만 했습니다. 결국 도토리나무가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면서 멧돼지는 나무에 깔려 죽고 말았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보고 깨닫는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깨닫는 사람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무엇 때문에 이 어려움이 나에게 왔는가를 깊이 생각하면서,
원인부터 고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당한 현실에만 몰두하지 말고, 생각을 돌려서
위에 계신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 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던지는 질문은
"내가 하나님께 예배하러 나아갈 때 무엇을 갖추어서 나아가면 됩니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참으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 하나님께 나아갔던 것입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뇌물을 받고 거짓으로 백성들에게 예언하고
축복하였습니다 (3:11).
또 정치 지도자들은 백성들을 착취하여 부를 축적했고,
상인들은 저울을 속여 이익을 챙겼고,
백성들은 가정에서 우상을 숭배하고 영적으로 타락했습니다.
권력을 잡고, 부를 얻는 일이라면 거짓된 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권력을 얻고 부자가 되면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며 성전에 나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고 복을 빌었습니다.

이미 20여 년 전에 북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범한 죄로 인해 적국 앗수르
에게 멸망당하여,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는 것을 분명히 보았으면서도,
유다의 백성들은 그들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경각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유다 백성들에게 미가 선지자를 통하여 그들을 책망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1. 공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본문 8절 a: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to act justly"

하나님은 공의로운 하나님 (습3:5) 이시기 때문에,
우리 믿는 자들이 공의를 행하며 살라고 하십니다.
공의를 행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정직하고 신실한 삶을 살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공의로운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경배하러 나아가는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께 번제 제사를 잘 드리면 되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헌금만 드리면 다 되고 나머지는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많은 재물보다도, 종교 의식보다도,
그 의식을 행하는 자들의 마음과 생활을 더 중요하게 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배의 어떤 의식보다도 예배드리는 자들의 마음과 생활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예물을 드릴 때도, 예물 자체보다도 예물을 드리는 자의 마음과 생활을
보시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이러한 윤리적인 종교입니다.
모든 우상숭배 종교는 윤리가 없습니다.
일본의 신도 같은 종교는 신사참배만 하면 무슨 짓을 해도 됩니다.
선악간의 관념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인격적인 신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믿는 자들과 신실한 관계를 맺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믿는 자들에게 올바른 생활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삶 속에서 거짓을 말하지 않고,
하나님과 신실한 관계 속에서 세상의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의 아버지에 대한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다.
칸트의 아버지가 객지에서 일을 보고 고향으로 가는 도중에 떼강도를
만나게 됩니다. 강도들은 그가 타고 왔던 말도 빼앗고 지갑도 빼앗고,
돈 되는 건 다 빼앗았습니다.
그러고는 강도들이 묻습니다. “이게 전부냐?”
칸트의 아버지가 “예, 이게 다입니다!” 하고 대답하니까,
강도들은 그를 해치지 않고 풀어주었습니다.
가진 거 다 빼앗기고 빈손으로 힘없이 고향으로 걸어가는데,
배에 무언가 딱딱한 것이 느껴졌습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옷을 꿰매서 배 아래에 감추어둔 금덩어리였습니다.
그는 강도들에게 ‘전부’라고 거짓말한 게 생각났습니다.
곧바로 강도들에게 달려가서 말했습니다.
“이보시오, 아까 내가 가진 걸 다 내놓았다고 말했는데, 사실은 뭐가
또 있었소.” 그러면서 금덩어리를 내밀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강도들은 그 누구도 그 금덩어리를 감히 받지 못했습니다.
‘아니, 세상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그랬겠지요.
그러자 강도 두목이 아무 말 없이 그에게 다가오더니,
빼앗았던 말과 물건과 돈을 다 돌려주고는 ‘안녕히 가시라’고 하고
자기들의 갈 길을 갔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신실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힘과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무슨 말을 하면 이웃이, 세상 사람이 다 믿어줍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신실한 사람 옆에 있으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까지 행복해집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 믿는 자들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세상에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신실한 삶, 공의를 행하는 삶을
살아갈 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2. 인자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8절 b: "인자를 사랑하며" “to love mercy"

인자는 자비와 긍휼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심으로 구체적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모습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가난한 자들의
친구가 되어주시고, 병든 자를 고쳐주시고, 천국 복음을 전해주시고,
최후에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의 죄를 속량해 주신 것입니다.

딛 3:5,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시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쫓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요일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기독교의 자비는 이론적이거나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난 사랑입니다.

인자는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인자는 남의 죄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에게는 관용하면서 남에게는 너무나 엄격합니다.
그래서 남의 잘못을 잘 용서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 죄인이며 실수가 많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바로 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실수나 죄를 용서하는 것이
인자를 사랑하는 삶인 것입니다.

또 하나는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며 도와주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의 불행을 함께
마음 아파하면서 힘있는 대로 돕는 것이 인자를 사랑하는 삶입니다.

한국의 김수환 추기경이 최인호 작가에게 한번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도 긴 여행이 무엇인지 아세요?"
"잘 모르겠습니다".
김 추기경은 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와 가슴을 가리키며,
"바로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여행입니다. 나 역시 평생 이 짧은 것처럼
보이는 여행을 떠났지만 아직도 도착하기엔 멀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자기 반성과 회개를 통해 조금씩 마음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주님께 나아가며 예수를 닮아야 합니다."

예수 믿은 지 꽤 오래되었는데,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 왜 이렇게
멀고 먼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가슴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품고 사랑을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사실 우리는 바르게 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고 정죄하고
판단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심으로
우리가 용서함을 받고 구원을 얻었으니,
우리도 마땅히 다른 사람에게 긍휼과 사랑을 베풀어야 할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며, 인자를 사랑하는 것이 곧 주님을 본받는 것이며
이러한 삶을 보시고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우리를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3.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

본문 8절 c: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to walk humbly with your God”

(약4:6)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우리 인간은 겸손 없이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사람의 견지에서 보면 좋은 사람, 선한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 아래에서 보면 누구나 다 죄인입니다.
자기 의로서 구원을 얻을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3:10)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만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먼저 내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겸손히 십자가를 붙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회개와 믿음을 통해서만 하나님과의 동행이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오직 겸손한 사람만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본래 겸손하기가 참 힘듭니다.
조금만 틈이 생겨도 자꾸만 높아지려고 합니다.
학력이 조금 있다고 하면 높아지려고 하고,
돈이 조금만 많아도 높아지려고 하고,
얼굴이 조금만 잘 생겨도 높아지려고 하고,
심지어는 조금만 은혜를 더 받는 것 같아도 높아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높아져서 교만하게 될 때는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교만은 불신앙입니다. 교만과 불신은 언제나 같이 다닙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스스로 높아져,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고,
그러면 반드시 망하는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슬은 산꼭대기에 내리지 않고 낮은 골짜기에 내리는 것처럼,
물이 낮은 웅덩이에 고이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도 겸손한 자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인도에서 사역했던 스텐리 존슨 이라는 선교사님은 늘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한번은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선교사님! 선교사님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습니까?"
그러자 선교사님이 말했습니다.
"저는 일생 동안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은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날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얼마나 겸손한 모습입니까?
사실상 매일 성경을 읽는 사람이 기도원에 올라가서 신비한 음성을
들었다고 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복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겸손한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일날 예배만 드리면 다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참으로 원하시는 것을 우리 삶 속에 실천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공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고,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