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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작성일 : 21-08-01 13:45
산희망을 갖자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563  
산희망을 갖자 (벧전 1:3-9)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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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신하가 왕의 노여움을 받아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떻게든 살기 위해서 왕에게 탄원을 했습니다.
"만약 왕께서 저에게 1년의 시간을 주신다면
왕께서 가장 아끼시는 말이 하늘을 날도록 가르쳐 보겠습니다.
만약 1년이 지나서도 말이 하늘을 날지 못한다면
그때 가서 저를 사형시켜도 좋습니다"하고 간청을 했습니다.

왕은 자신의 말을 너무 아끼고 사랑했기 때문에
그 말이 정말 하늘을 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것이고,
만약 1년이 지나서 말이 하늘을 날지 못한다면
그때 그 거짓된 신하를 사형시켜도 손해 볼 것이 없다는 생각에
그의 탄원을 받아 들여 사형을 1년간 유예해 주었습니다.

이 놀라운 사건에 주위의 신하들이 걱정스런 마음으로
그 신하에게 반문했습니다.
"아니, 당신이 무슨 수로 말이 하늘을 날 수 있도록 가르친단 말이오,
도대체 그게 말이나 됩니까, 어쩌려고 왕께 그런 엄청난 거짓말을
했단 말이오"라고 하며 다들 걱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신하는 아무런 걱정도 없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1년 사이에 왕이 죽을 수도 있고,
아니면 내가 1년 사이에 병으로 죽을 수도 있고,
아니면 왕의 아끼는 그 말이 죽을 수도 있지 않겠소,
1년이란 기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 누가 알겠소.
혹시 또 모르지요, 진짜로 1년 뒤에 말이 정말 하늘을 날게 될는지."

이것은 유태인의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로,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인간의 생명에 대한 집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희망은 사람이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인 것입니다.

요즘 세계가 코로나 변종 바이러스로 난리입니다.
우리 미국은 백신이 개발되어 코로나 펜데믹이 끝나는가 했는데
다시 변종 바이러스가 퍼져 확진자가 무수히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일로 사람들은 불안이 커져가고, 몸도 마음도 다 지쳐있답니다.
여러분 우리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희망을 잃지 않고, 희망을 이야기하고, 서로 희망을 주는 말을 합시다.
베드로전서는 당시 박해를 받고 각처로 도피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하려고 기록된 서신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들이 산희망을 가질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본문을 통해 그 이유를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1.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3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산 소망이라는 단어입니다.
Living hope. 살아있는 희망입니다.
우리 인간은 음식을 먹지 않고도 40일을 살 수 있고,
물을 마시지 않고도 4일을 견딜 수 있고,
숨을 쉬지 않고도 8분을 버틸 수 있지만,
그러나 희망이 없이는 잠시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철학자 킬케골은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라고 했습니다.
단테의 신곡에 보면 지옥의 입구에는 이런 글이 붙여 있다고 합니다.
”이곳에 들어오는 자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
희망이 없는 곳이 바로 지옥이며
희망을 버리는 것은 생명의 가치를 잃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절망적인 생각을 희망적인 생각으로 바꾸며
고난 중에도 희망을 이야기하며
밤에도 새벽을 보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제 2차 세계 대전 때, 제일 처음으로 폭격을 당한 곳이 영국 런던입니다.
영국 신문들은 일제히 ‘어제도 독일로부터 무수히 폭격을 당했다’라는
부정적인 사실만 보도했습니다.
그런 부정적인 신문 보도만 보면서
시민들은 더욱 낙심하고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는 곧 런던의 신문사 편집국장들이 모여,
“이제는 희망을 보도하자”고 결의했습니다.
그 다음날부터 런던 신문들에는
영국 군인들의 용감한 모습과 후방에서 피해복구를 위해 땀 흘리는 모습,
교회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실렸습니다.
그 기사를 보는 시민들은 희망을 가지기 시작했고
결국 영국은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절망을 말하면 더 절망하게 되고,
희망을 말하면 희망적인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처한 모든 상황이 어둡게 느껴지고,
나에게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암울하게 느껴질 때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당시 모든 것을 포기하고 흩어져 땅굴에서, 카타쿰에서,
지하동굴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이 아직도 희망을 갖고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 이유는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 순간 거듭납니다.
그리고 거듭난 사람 안에 주님께서 성령으로 임재하셔서
살아있는 희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주님은
우리가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가치관을 가지고
인생을 살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어떤 고난과 시련이 와도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거듭나게 하시고
산 희망을, 부활의 희망을, 천국의 희망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5절: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하나님께서는 능력으로 그의 자녀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세상의 어떤 것도 우리를 흔들 수가 없습니다.

로마서 8:35, 38-39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환난, 핍박, 기근, 역병, 칼이나, 세상 어떤 권력자나 심지어 죽음까지도
우리를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신명기 32:9-12,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 택하신 기업이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하나님은 그를 간절히 믿고 신뢰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눈동자와 같이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독수리가 새끼를 품에 안고 보호하는 것 같이,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노예로 있을 때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애굽 왕 바로 앞에 재앙을 내렸습니다.
마음이 강팍한 바로 왕에게
마지막 10번째 재앙, 모든 장자를 죽이는 재앙을 내리십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대문 문설주에
바르게 했습니다.
죽음의 천사가 어린양의 피가 문설주에 발라진 이스라엘 백성 집에는
들어가지 않고 건너 뛰어 pass over 했고,
피가 묻혀있지 않은 애굽 사람들의 집에는 들어가
그 집의 처음 태어난 모든 장자를 죽였던 것입니다.
심령에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김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서 모든 재앙에서 건져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영국에 존 플레처 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모험을 좋아해서 어느 날 브라질의 어느 동굴에 금은 보화가 담긴
보물 항아리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동료들과 함께 배를 타고 브라질로 탐험을 떠나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배를 타고 출항하기로 한 그날 아침, 그는 실수로 테이블을 잘못 건드려
끓는 물주전자가 넘어지며 몸에 심한 화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는 꼼짝도 못하고 방에 누워서 창밖으로 보물을 찾아 떠나가는 배를
바라보며 자신의 신세를 크게 한탄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들려온 소식은
브라질로 떠난 그 배가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생각할 때,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지켜주신 것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그의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여,
세속적인 탐험가에서 영적인 탐험가로 탈바꿈을 하게 됩니다.
세상 보물이 묻혀 있다는 브라질보다도 더 멀고 낯선 땅으로 찾아가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선교사로 활동하게 됩니다.
그는 사람들을 찾아내어 훈련시켜 하나님의 일꾼 만드는 일에
전념했습니다. 그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당신을 위한 최고의 삶을 아세요?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어떤 때는 일이 잘 안 되는 것 같고,
어려움과 불행이 닥쳐도,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섭리하시고 주관하시기 때문에
어려운 일도, 불행한 일도 결국은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을 지켜주시며, 하나님의 뜻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3. 영혼의 구원을 받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9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죄악 가운데 죽었던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구원을 받습니다.
영혼이 소생하는 것입니다.
영혼의 구원이 우리의 산희망입니다.

어느 미술가는 1불 짜리 화폭에다 그림을 그려 천 달러의 작품을
만들어 냅니다. 이것이 예술입니다.
롱펠로 시인이 작은 종이에 쓴 시는 훗날 6천 달러의 가치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문학적 재능입니다.
트위터 창업자 잭 도시가 자신의 15년 전 올렸던 첫 트위트 메시지를
암호화폐인 Non Fungible Token으로 만들어 경매해 250만 달러의 가치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디지털 기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에 찌들고 무가치한 인생을 부르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기시고 성령을 부으셔서 축복된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 내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합니까?
주님께서 죄를 사하여 주셨음에도 아직도 죄로 괴로워하며,
조금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냥 불평하고 사람과 하나님을 원망하고,
구원 받았음을 믿으면서도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는 모습이 아닙니까?
우리는 구원의 확신을 통한 산희망을 갖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의 담대한 용기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그들은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붙잡혀 원형 경기장으로 끌려가
사자의 밥으로, 십자가의 화형으로 처형을 당했습니다.
그런 핍박 속에서도 그들은 주님을 부인하지 않고
찬양을 부르면서 원형 경기장을 걸어 들어가 순교를 당했던 것입니다.
1세기 그리스도인들의 그 담대한 모습,
그것은 그들에게 천국의 신앙, 산희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신앙은 오늘 우리의 삶을 바꿔줍니다.
우리가 천국을 믿는다면 오늘의 삶은 달라집니다.
내가 이 땅에서 좀 손해를 봐도 지금 좀 잃어버려도,
주님께서 영원한 것을 준비하셨기 때문에 초연할 수가 있습니다.
내가 오늘 죽는다 하더라도 내일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하리라는
그 신앙이 있다면,
우리는 그 어떤 고난과 위협, 질병과 전염병 앞에서도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산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고, 온 세계 만물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지으신 분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시며,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셔서 영원히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산희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 험한 세상에서 때로 시련도 오고 재난도 당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는 험한 세상입니다.
교통사고, 총기사건, 산불, 자연재해, 그리고 바이러스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죽어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우리 영혼을 구원하신,
우리에게 산희망을 주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