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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작성일 : 21-03-21 14:47
십자가를 진 사람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92  
십자가를 진 사람 (마가복음 15:16-32)

군병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 면류관을 엮어 씌우고
예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찌어다 하고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희롱을 다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쌔 누가 어느 것을 얻을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그 위에 있는 죄 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가로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 오라 하고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로 보고 믿게
할찌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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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교회력으로 지금 사순절 기간에 속해 있습니다.
다음 주일은 종려주일이고 고난주간이 시작되며
그 다음 주일은 부활주일이 됩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의 수난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의 고통당한 사건을
'그리스도의 수난(The Passion of Christ)'이라고 합니다.
패션(Passion)은 '열정, 격한 감정'이라는 뜻도 있고,
'수난, 고난'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본문 전후를 보면 1-15절에서 예수님께서 빌라도 총독의 법정에서
빌라도의 재판을 받으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16절을 보면 로마 군인들이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예수님을
끌고 갔습니다. 브라이도리온은 빌라도 총독의 관저 안 뜰을 말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로마군인들은 예수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머리에 가시를 엮어 만든 관을 씌우고 희롱을 했습니다.
당시 왕들은 자색옷, 보랏빛 옷을 입고 왕관을 썼지요.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을 왕같이 분장을 시키고, 왕 앞에서 예를 갖추는
척 하며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하냐?”하며 희롱했습니다(18절).
또 왕권상징의 지휘봉을 가장한 갈대를 가지고 예수님의 머리를 치고,
침을 뱉고, 왕 앞에서 신하가 하듯이 무릎을 꿇어 절하는 척 하면서
희롱을 한 것입니다 (19절).
희롱을 다하고는 자색옷을 벗기고 원래 옷을 입히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십자가를 지우고 골고다로 끌고 올라갔습니다 (20절).

빌라도의 법정에서 골고다 언덕까지의 길을 라틴어로 비아돌로로사라고 하는데,
그 뜻은 '슬픔의 길'이라는 뜻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처음에 육중한 십자가를 홀로 지고 언덕길을
걸어서 올라가기 시작했지만, 너무 힘들고 지쳐서 여러 번 쓰러지셨습니다.
전날 밤, 예수님은 밤새 기도하시고, 그후 붙잡혀 심문을 받으시고,
채찍에 맞으셨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고 갈 힘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올라갈 때 수많은 군중이
길 좌우편에 몰려 왔습니다.

그 사람들 가운데 멀리 아프리카 북부의 구레네 지방에 사는 유대사람
시몬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시몬은 디아스포라 유대인(흩어진 유대인)으로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멀리 아프리카에서 예루살렘으로 왔던 것입니다.
시몬은 그 날 아침 예루살렘 성전에 가기 위해서 여관에서 나와 길을
가다가 많은 인파가 모인 것을 보고 구경하려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가시는 곳 가까이로 왔습니다.
그때 로마 군인이 갑자기 그를 지목하고 불러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가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당시 로마군인들은 로마의 식민지에 있는
백성들을 언제나 마음대로 강제 부역을 시키던 때였습니다.
이 구레네 시몬은 로마군인의 명령에 할 수 없이 그 무거운 십자가를
예수님 대신 짊어지고 골고다까지 올라갔습니다.

이렇게 억지로 남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올라가면서
시몬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 그의 마음 속에는 불평과 원망이 가득찼을 것입니다.
“오늘 정말 재수 없는 날”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 육중한 나무 십자가가 무거워 힘도 들었겠지만,
당시에 십자가를 지는 것은 사형당할 악한 죄수들만 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는 큰 수치와 모욕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더욱이 성전에 가려고 멀리 아프리카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성전에는
가지 못하고 그런 일을 당했으니, 생각할수록 분하고 억울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 말도 못하고 할 수 없이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땀을 흘리며 골고다까지 올라갔습니다.

시몬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면서 예수님의 모습을 살폈을
것입니다. 또 십자가 위에서 자기를 못박는 자들을 위하여 하는
예수님의 기도도 들었을 것입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누가복음 23:34).
또 예수께서 “다 이루었다”(요한복음 19:30) 라고 말씀하실 때,
해가 빛을 잃고 대낮이 캄캄해지며, 바위가 터지는 놀라운 징조도
보았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경험은 그로 하여금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믿게 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를 믿은 후에 시몬은 그가 예수님 대신 억지로 십자가를 졌던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였을까요?
한 마디로 감사히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주님이 자기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는데, 그도 주님을 도와 잠깐이라도
십자가를 졌던 것이 얼마나 마음 뿌듯하고 감격이 되었을까요?

구레네 시몬이 생각지 않게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잠시 지게 되었지만,
그것은 그에게 놀라운 축복이었습니다.
성경의 여러 기록들을 보면 이 구레네 시몬은 나중에 신실한 신자가
되었고, 그의 아들들은 초대교회에 훌륭한 감독이 되었다고 합니다.

본문 21절에 보면 구레네 시몬은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쓴 것을 보면, 마가복음은 당시 로마 사람들을 위해 쓴 복음서인데,
마가복음에 그들의 이름이 기록될 정도로 로마 교회 안에서 알렉산더와
루포는 잘 알려졌던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에 편지할 때에, 로마서 16:13에 보면,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내 어머니니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구레네 시몬의 아들 루포는 그 때 로마에 살았으며,
잘 믿을 뿐만 아니라, 루포의 어머니는 사도 바울을 잘 도운 여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구레네 시몬의 아내’인 루포의 어머니를 사도 바울이 자신의 어머니라고
불렀다면, 그 가족들은 신앙적으로 존경받은 사람들이었음이 분명합니다.

또 사도행전 13:1에 보면,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어서
금식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택하여 전도하러
보내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고 그들을 안수하여 보내는 기사가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바나바와 사울을 안수한 선지자들과 교사들 가운데
둘째로 쓰여진 이름이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입니다.
이 시므온은 구레네 시몬과 동일한 인물입니다.
니게르는 니그로와 같은 말인데 그 뜻은 검다는 뜻입니다.
구레네 지방은 아프리카 북부지역이므로 열대지방이어서 시몬은 얼굴이
다른 사람보다 좀 검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니게르 시므온은 곧 본래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졌던
구레네 시몬인 것입니다.

그 사실을 생각할 때, 이 구레네 시몬과 그 가정이 나중에 얼마나 큰
신앙적인 축복을 받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잠시 주님의 십자가를 졌지만 그 이름은 지금까지 존귀하게 되었고,
그 자손들이 다 복된 인물들이 되었음을 성경을 통해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처럼 십자가를 지는 자에게 하나님은 큰 축복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평안북도 정주에 시각 장애인이며 남자무당인 백사겸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굿을 잘해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하루는 굿을 하는데 많은 구경꾼이 모였는데 그중에 한 선교사도
끼어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당은 그날 아무리 애를 써도 신이 내리지 않아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데, 선교사가 그 무당에게,
"자식을 망하게 하는 무당 짓을 그만하고 예수 믿고 천당 가세요"
라고 말하고는 떠나갔습니다.
선교사가 떠나가자 신이 내려 겨우 굿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 일로 그 무당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 신이 내리지 않은 것을 보니까 귀신보다 더 큰 신이 있구나’
생각하고, 자식을 망하게 하지 않으려고 다음날 선교사를 찾아가서
‘어떻게 하면 자식이 잘 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선교사는 "예수를 믿으면 자식이 잘 되고 복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는 무당 일을 청산하고, 온 가족이 예수를 믿고 교회에
출석했습니다. 그때 교회 건물이 건축 중이었는데 재정이 없어
공사를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무당 일을 하여 번 돈으로
사놓은 땅이 있었는데, 그 땅을 팔아 교회에 건축헌금을 하여
예배당을 완공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에 자신의 재산을 다 헌금한
후에 그는 예배당을 관리하는 사찰 일을 하고 살았습니다.
한번은 그의 아들이 똑똑하다는 말을 들은 선교사는 백사겸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들을 미국에 데려가 공부 시켜도 되겠습니까?"
그가 허락을 하고, 아들은 선교사의 도움으로 미국유학을 하게 되고,
한국에 돌아와서 초대 참의원 의장과 2대 문교부장관, 그리고
연세대학교 총장을 지냈습니다. 그 아들이 바로 백낙준 박사입니다.
무당이었던 사람이 예수를 믿고 변화되어 주님께 헌신할 때,
하나님은 그의 자녀를 축복하셔서, 그들을 들어 국가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귀하게 쓰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진정 축복받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십자가를 질 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6:24 말씀에 예수님께서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축복도 없습니다.
No Cross, No Crown.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도 없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후에 부활의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질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놀라운 축복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십자가를 잘 질 수 있을까?”를 항상
생각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기 위하여 버려야 할 것, 끊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이 버리는 아픔이 십자가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기 위하여 죽여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이 죽이는 아픔이 십자가의 고통입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나를 희생하고 내가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십자가를 내가 지고 주님과 함께 죽을 때, 주님께서 나를 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 10:38-39,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주님은 역설적인 진리를 가르치십니다.
살자니 문제가 많지 죽겠다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내가 죽는 것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정말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희생하며 내 자아를 죽이는 것이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에 주님께서 살리십니다.
부활의 능력이 부활의 생명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입니다.

여러분, 힘들어도 주님이 주신 십자가를 지고 기쁘게 살아갑시다.
그럴 때 그 십자가가 나중에 보면 나의 영광이 되고,
나의 자랑이 되고, 자손 대대로 그 십자가로 인해서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항상 기쁜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름으로
큰 축복을 받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