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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12-22 12:51
출애굽기 영성노트 34-1 모세 지팡이의 의미 재적용
 글쓴이 : Ezra
조회 : 7,903  
출애굽기 영성노트 34-1 모세 지팡이의 의미 재적용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지팡이를 주신 것은 역사상 이스라엘을 다시 가나안 복지로 인도하실 때 단 한번 모세의 경우밖에 없다. 그 지팡이에 대한 묵상과 함께 영적 적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하고자 한다.

1.    하나님께서 왜 그 지팡이를 모세에게 주셨을까. 우선 그 지팡이가 사용된 경우들을 보면다음과 같다. 

1)    나일강을 피로 물들이고,
2)    지팡이를 던져 변해 뱀이 되게 하며 그 뱀꼬리를 잡으면 다시 지팡이가 되게 하고,
3)    홍해를 가르고,
4)    바위돌을 쳐서 물을 내게 하고,
5)    아말렉이 공격해 올 때 높은 곳에 올라가 그 지팡이를 두 손으로 높이 들어 기도할 때 이스라엘이 승리하게 하였고,
6)    후일 모세와 아론의 지도력이 도전을 받을 때 이스라엘 각 지파 장로들의 지팡이들과 함께 진열하게 하시고 그 모세와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나고 꽃이 피고 또 열매를 맺게 하시는 이적으로 지도력을 회복하게 하셨고,
7)    마지막으로 모세가 다시 가데스바네아 광야에서 백성들이 물부족으로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께서 엎드려 기도하던 그에게 일어나 그 지팡이를 취하여 바위를 명하여 물을 내라 하셨으나 모세가 그 바위를 두 번 내리치고 바위가 물을 내었지만 그 일로 모세의 삶 마지막 부분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고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입구에서 삶을 마치게 되는(그러나 물을 내는 기적은 다시 행해졌고)..  등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심 등으로..

모세는 결국 하나님께서 주셨던,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라는 사명을 완수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그 엄청난 사명을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지만 믿음의 방법으로라도 하나님이 원하셨고 그렇지 않으면 불가능했기 때문에 능력의 지팡이를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 일을 돕기 위해 하신 일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사역자에게는 그것이 무엇이든지(그것이 지팡이이든, 아니면 다른 것이든) 그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시고 가르치시고 인도하시며 이루시는 것을 보고 쓰임 받게 되는 귀한 도구가 되는 특권의 기회가 된다.

2.    모세 지팡이의 특징들

1)    하늘에서 내려온 지팡이가 아니라 모세가 광야생활 중에 평소에 갖고 다니던 목자의 지팡이였다.
2)    그래서 모세의 지팡이로도 불렸지만 아론의 지팡이로도 불리웠다.
3)    1항에서 전술한 바와같이 이는 하나님의 목적 수행을 위해 불가피하게 주신 것이다.
4)    먼저 “그 지팡이를 취하라(사용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나서 모세가 순종했을 때만 하나님께서 그 지팡이와 함께 능력을 행하신 것이지 아무때나, 누구든지 그 지팡이만 갖고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5)    그 지팡이가 사용될 수 있는 능력이 그만큼 하나님에 의해 제한적으로 허용되었다. 는 의미가 된다. 전술한 바에 의하면 모두 7번이 전부이다.
6)    그 이후에는 하나님의 법궤 앞에 진열되는 목적으로 있다가 성막이 블레셋에 의해 탈취당하고 법궤를 비롯한 기물들이 탈취당했거나 소실되었을 것이다. 기타의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일에 사용되었던 법궤, 우림과 둠빔, 예수님의 성의(닿기만해도 능력이 나와 병이 낫는) 등 물품들처럼 소실된 것으로 보여진다. 만일 그런 것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면 우상숭배거리가 되거나 탈취를 위한 전쟁 등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전술한 하나님의 뜻과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므로 모세의 사체처럼 신비속에 남게 하셨을 것이고 설령 아무나 그것을 기연으로 갖게 되었다해도 의미도 없는 것이므로 생각할 가치도 없다 생각된다.

3.    모세 지팡이의 영성 재묵상

모세는 출3장에서 그런 사명을 주신 하나님께 출4장에서 증거를 요구(심리적 상황)했고 하나님은 세가지 초자연적 능력을 나타내는 표적들을 주셨다. 그 중 첫 번째 표적이 지팡이이다. 그리고 하신 말씀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네 손에 가진 것이 무엇이냐? – 지팡이이니이다.
분명한 것은 그 지팡이가 하늘에서 내려 온 것이 아니라, 모세가 평소에 갖고 다니던 물품의 거의 유일한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점이다. 광야에서 목동 생활을 하던 사람에게 지팡이는 생명과 같은 것이다. 가장 의지가 되는 것, 소중한 것을 버리라(의지하지 말라) 하시는 것이다. 앞으로는 인간(혹은 물질 세상)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서 신앙으로 살라는 뜻으로 생각된다. ,

2)    그 지팡이를 땅에 던지라 – 던지니 뱀이 되었고 모세가 두려워 했다.
그것을 땅에 던지니 지팡이가 변해 뱀이 되었다. 가장 인간이 소중하게 생각하고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신앙(영성)을 위해서는 가장 방해거리(뱀-에덴동산 시절부터)가 된다. 그것을 더 의지하고자 하면 할수록 더 큰 방해거리가 된다. 그것을 던져 버려야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 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던져 버리고 나니 이젠 아무것도 없고 그 놈의 뱀도 무섭다. 오히려 나를 죽이려 할 것같다. 어렵게 예수믿고 신앙 생활하고자 친구도 나쁜 사업도 정리하고 나니 이젠 그들이 나를 원수로 여겨 공격하려는 것과 같다. 실제로 바로가 하나님을 비웃는다. 네 신(하나님)은 주술사정도더냐? 그리고 바로도 그의 제사장들을 통해 지팡이를 던져 뱀이 되게 하고 뱀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진다. 이럴 때.. 당연히 두렵다. 그러나.. 모세의 뱀이 바로의 뱀을 잡어 삼켜 버리는 것으로 끝난다. 왜? 모세의 배후에는 지금 특별한 목적으로 이렇게 일하고 계시는 전능의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3)    그 뱀 꼬리를 잡으라 – 뱀 꼬리를 잡으니 뱀이 다시 지팡이로 변했다.
왜 머리가 아니고 꼬리일까. 인간적으로는 상식적으로 뱀을 제압하려면 먼저 머리를 제압해야 하는데. 꼬리를 잡을 때 그 뱀이 물으면 어떻하나 두려운데. 정답은 그 일을 허락하시고 그렇게 하기를 명하시는 하나님께 밖에 없다. 하나님이 선한 목적의 일을 위해 그렇게 연약한 인간인줄 알면서도 그렇게 명하시는 이유는 인간이 능력의 표적을 구할 때에 그 능력(표적) 자체를 하나님보다 더 크게 여기지 말고 이해가 되든 안되든, 오직 믿고 순종하라는 뜻으로 그렇게 하셨을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그 부분이 신앙 생활 바로하기 힘든 가장 큰 이유이며 그 순간을 믿음으로 극복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다.

상식적으로는 머리부터 잡고 제압해야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고 원하시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작은 부분에서부터 먼저 충성)이다. 몰라서(아니면 능력이 없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고 인간적 방법으로 맞상대해서 싸우면(아니면 억지로 하면) 영적으로는 그만큼 더 의미도 없어지고 불가능해 지는 것이기에..

또 지나고 나서 말이지만.. 하나님께서 선하신 사명을 위해 택하시고 부르시는 자는 결코 죽음으로 망가지는 법이 없다(하나님께서 보호 인도해 주시기에). 그래서 반대로, 그것을 믿을 수 있다면 믿을 수 있는 만큼 더 큰 승리와 위로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말씀대로 그렇게 꼬리를 잡았다! 그리고 뱀은 다시 지팡이가 되었다!

4)    다시 그 지팡이를 감사함으로 잡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사용하자!
신앙 초보에게(사명자 초보) 이렇게 반드시 한번은 어려움이 있지만 지팡이가 뱀이 되었다가 믿음으로 순종하여 그 꼬리를 잡아 다시 지팡이가 된 그 지팡이는 겉모습은 이전과 같은 지팡이로되 결코 같은 것이 아닌 것이다. 또 손에 그 지팡이가 다시 주어져 있긴하지만, 그 지팡이를 넘어서서 그 마른 막대기에 불과한 지팡이를 능력의 산 지팡이가 되게 하시는 하나님, 그 분의, 선하신 목적을 위해서 일하시는, 순종하는 자를 찾으시고 그가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사랑의 아름다움과 크심을 바라 보자.

만일 그 당시 처음부터 모세가 그만한 말씀에 대한 충분한 믿음이 있었고 표적도 구하지 않았더라면 하나님께서 굳이 그에게 지팡이까지 주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또 후에라도 지팡이로 많은 기적을 행하며 하나님을 뜻을 이룰 수 있었을지라도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성숙함이 있었더라면 모세가 마지막에 지팡이로 명하여 물을 내게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위반하며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쳐서 물을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 잘하고도 끝이 않좋으면 그것은 좋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이 경우 모세가 불순종했다기 보다는 하나님을 위한 의협심(?-하나님께서 그렇게까지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참으셔서 어떠한 경우에도 참으시며 지금까지 공급해오시고 인도해 오셨는데 이전의 같은 실패의 자리 가데스 바네아에서 백성들이 또 원망하는 것이 너무나 한심해서(백성에 대해 화가나서) 그랬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그 점은 인정하셨기 때문에 모세가 비록 지도자로서 아름답지 못한 행동의 인간적 실수를 했을지라도 용서해 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위를 열어 또 물을 내셨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은 그의 인간적 공과를 초월해서 영성의 기본적 원리들을 묵상하자는 것이므로 이 부분은 지적하고 마쳐야 할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복의 동산, 에덴동산이 인간의 실패로 추방의 동산으로 변한 것처럼 하나님은 복을 주시고 싶으셔서 가나안을 주셔서 또 가나안에서 쫓겨나는(포로, 망국의) 실패가 있게 되는 일이 계속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모세는 처음으로 참 믿음의 세계의 지도자로서 개척자처럼 태어나는(만들어지는) 과정에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역 모델로 그랬을 것이라 생각된다. 또 당시의 신앙 초기적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일어난 일은 오늘의 상황과 비교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에겐 그 일시적인 지팡이보다 더 본질적인 말씀, 예수 신앙 그리고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것은 항상 감사, 순종하며 영광을 그 분께 돌리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