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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10-04 22:04
출애굽기 영성노트 29 – 모세와 아론 관계를 통해 배우는 영성
 글쓴이 : Ezra
조회 : 6,982  
출애굽기 영성노트 29 – 모세와 아론 관계를 통해 배우는 영성

- 성경에 의하면 제사장은 오직 레위지파에서 나오게 되어 있다. 레위지파는 야곱의 아내 레아의 셋째 아들 레위의 자손들이다. 게르손, 고핫, 므라리 등이 그의 아들들이다. 레위는 자매 디나가 강간 당했을 때 그로 인해 그를 강간했던 자의 부족(세겜성)의 모든 남자들을 형제들과 함께 칼로 죽여 야곱을 두려워 떨게 만든 자, 출애굽기 32장에서도 아론의 금송아지 사건으로 인해 분노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금송아지 편과 하나님 편 중에 하나님 편에 서기 원하는 자들을 나아오라 했을 때 나왔던 유일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동족 중에 이번 일에 문제를 야기시켰고 또 형제들 중에 앞으로 나아오지도 않는 사람들을 칼로 살상했으며 그렇게 그 날 죽은 사람들이 삼 천에 이르게 하였다.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한 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로서 그것이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수치로 여겼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심이 많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 모세와 아론은 레위지파 사람들이다. 그들은 레위 지파의 후손들로서 아므람과 요게벳의 아들들로서 아론은 모세보다 3살 많았고 미리암이 아기 모세를 돌본 것을 보면 그녀는 모세보다 손위 누이였을 것이다. 그들은 애굽 400년 종살이 마지막 부분에서 출애굽(해방)에 큰 역할을 감당하며 광야 생활을 이끈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들이다. 호렙산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나는 말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을 때 하나님은 그의 형 아론을 그의 대변자(portavoz)로 세우시고 모세를 돕도록 하였다(출3). 출애굽 시대에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보내기를 거절할 때 아론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그의 지팡이를 폈고 그 때마다 애굽에 하나님의 재앙이 내려 졌다(출4:30; 7-8장). 또 출애굽 후 그 지팡이로 모세가 홍해를 갈라 백성들로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너게 했으며 그 후 광야 행로에 있어서 아말렉의 공격으로 부득이한 전투를 할 때 지팡이를 들고 하나님께 전투의 승리를 위해 기도하는 모세의 양팔을 아론과 훌이 양쪽에서 위로 들어 이스라엘이 승리하게 하는 데에 기여하였다(출17장).

- 혈육으로보면 아론이 모세보다 형이지만 하나님께서 아론을 모세의 도움자로 명하셨기 때문에 모세가 대표적 권위와 리더십을 가졌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 주시고 말씀하실 때 시내산에 모세와 아론만 올라 갔지만 아론은 산 아래 이스라엘 70 장로들과 함께 있었다(출19:24). 그 때에 모세만 산 위로 올라 하나님을 만났다는 것이 그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사역은 이처럼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함께 하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물론 그들도 중요하긴 하지만, 그를 부르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존중해야 한다. 백성들은 산 아래 있었으며 모세가 40일간 시내산에 있을 때 아론과 훌이 모세에 의해 모세가 내려올 때까지 지도자로서 임명되었다(24:14). 모세가 시내산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아론과 그 아들들이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는 규례를 그들에게 알려 주셨다(28:1). 여기까지는 모세와 아론이 그야말로 멋진 동역을 한 셈이다.

-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뜻과 모세의 부탁으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아론은 지도자로서의 사역의 첫 출발부터 그야말로 하나님의 백성, 특히 지도자로서는 영원히 도저히 그렇게 해서는 안될, 이스라엘 역사상 최대의 실수(금송아지-아피스-애굽의 우상들 가운데 풍요와 축복의 신- 을 만들어 백성들로 하여금 음란하게 섬기게 한 것-출32장)를 범하고 만다. 십계명의 1-3(하나님에 관한 첫 세가지 계명들-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말고, 우상을 만들지 말며,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 계명들을 완전히 농락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산에서 내려와 그것을 보고 분노하며 책임을 묻는 모세에게 아론은 놀랍게도 핑계(분명한 거짓말이 가미된- 그냥 백성들이 가져온 금을 모아서 불에 던졌더니 그렇게 금송아지로.. 나왔다)로 일관하였다.

- 다른 사람 같았으면 당장 엄중한 벌을 받아 죽었을 것이지만 그가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조력자로 맡겨준 자이고 여러 사역의 각종 위험과 고난 속에서 함께 해 왔으며(이것이 결정적 이유).. 또 혈통상으로 친형이기에(?)… 백성들의 죄는 분명하게 밝히고 처단했으면서.. 그 때 하나님은 분명히 진노하셔서 아론을 멸하려 하셨지만 모세가 오히려 그를 죽이려면 차라리 자신을 하나님 나라의 명부에서 지워달라(죽여달라)고 중보 기도했고 그 결과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에 의해서 아론은 생명도 구하고 그 후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으로 남을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보면 비록 아론이 이전까지는 하나님의 뜻대로 맡겨주시는 사역을 잘 감당하였지만 그 후에 한 일들은 도저히 상상을 초월하는 반대 행동을 하였고 그 결과 하나님, 이스라엘, 심지어 모세의 최고 지도자로서의 임무 수행 등에 결정적으로 누를 끼쳤으며 심지어는 그로인해 그의 자식들(나답과 아비후)이 성소에서 하나님이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사용해서 분향하게 방관함으로써 제단에서 불이 나와 그들을 삼키므로 두 아들을 잃게 되어(레10장) 그의 개인적 삶도 불행한 간증을 남기게 된 것이다. 만일 후에라도 하나님의 용서(일시적)를 받은 아론이 그 후에 행동을 뉘우치고 잘 했더라면 동생 모세의 형의 목숨을 구한 중보기도가 하나님과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결과로 빛이 났겠지만 그 결과는 하나님과 백성, 모세, 그리고 이스라엘의 장래의 역사를 볼 때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일이 이렇게 될 것도 아셨음에도 그렇게 허락하시고.. 그리고 그로인한 이후의 모든 상처들을 그대로 받으셨고 당신의 방법으로 처리하셨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은 모세의 중보기도대로 그를 살려주고 또 원래의 계획대로 아론이 대제사장이 되어 아론의 후손들이 제사장직을 감당하도록 해주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후에도 계속 그 자신의 지나친 자존심과 자신을 고집하는 잘못 때문에 결국 후에 두 아들도 잃게 되고 또 누이 미리암과 함께 모세가 구스여인(이방 여인)과 결혼한 것이 하나님의 율법에 어긋나며 지도자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것을 함께 비방하며 결국 모세가 가진 독특한 선지자로서의 권위를 부인하였다(민12장). 그 때 미리암이 하나님의 징계로 문둥병이 걸리자 이번에는 모세에게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용서와 긍휼을 베풀어 줄 것과 모세가 하나님께 그들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하기도 하는 무식, 비겁한 행동을 한 것이다. 모세는 다시 미리암을 위해 중보기도했고 하나님은 다시 그의 기도를 들어 주셨다. 그래서 미리암의 문둥병이 치유되었지만 미리암을 부정한 여인으로 간주하여 한 주 동안 진 밖에 두었다가 그 후에야 진 안으로 들어 오게 하였다.

- 한 마디로, 인간적인 면에서는 금송아지 사건 이후의 아론은 아예 수준 이하의 사람으로전락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백성들이 음란하게 그것을 섬기게 한 이후에 일어날 미리암과의 반역 사건도 미리 아셨을 것이고 또 그 아들들이 율법 규례(율법 운영조항에 관해 하나님께서 명해 주신)로 금지되어 있는 성소에서의 불을 하나님께서 지정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사용해서 제사를 드리다가 제단에서 불이 나와 타죽을 것까지도 이미 알고 계셨을텐데.. 어떻게 그런 사람을 대제사장으로 거룩한 제사를 드리는 일에 그대로 맡기셨을까? 아마 첫째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진정한 사역의 동반자로 여기시기 때문에 모세의 기도를 들어 주시기 위해서 그랬을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통치 안에서 하나님을 반대하는 자의 모든 행동의 결과는 그 자신 스스로의 결정에 의한 죄의 결과에 의해 스스로 망하기 때문에(자업자득, 사필규정) 그것이 그로인해 비록 여러가지로 아름답지 못한 결과와 함께 여러 면에서 나쁜 영향을 미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래서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교훈을 남겨 주셨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적어도 인간의 패망이 결코 하나님의 모순 때문이 아니라, 반대로 하나님께서는 최선의 자비와 사랑으로 인도해 주셨음에도 일어난 인간의 순종의 실패로 볼 수 있고 그래서 그것은 또한 어떤 사람이든지 진정 하나님을 순종하는 사람이 복을 받게 되는 원리를 보여 준다 하겠다.

- 그러나 여기에 그 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그것에 관한 필자의 결론은 인간 행위(공로)가 아닌 전적 “은혜로”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첫째, 만일 어떤 사람이든 그가 하는 행위로 구원이 결정된다면 연약하고 제한된 육신인 사람이 계속 살아 남을 가능성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그렇다고 본다. 둘째, 창세기에서 구절 구절 나타난 창조를 통한 하나님의 성품과 창조의 의도는 피조물의 영장인 사람을 축복하시고 그 사람이 감사, 동행하는 “선하신” 하나님께 대한 영적 교제에 있는 것이지, 그 사람이 실수하는 대로 그대로 처벌해서 결국은 다 죽게하기 위해 만든 것이 결코 아님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비록 사람이 육신적 부족함(연약,제한)에도 불구하고 순종하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도 기꺼이 그 부족한 부분을 체율하시고 채우시고 축복하시는 교제에 이르게 하시기 위한 모든 대가를 지불하실 것 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에덴 동산 중앙에 두 나무(영생나무, 선악과 나무)를 두시지 않았는가(‘에덴의 영성’ 글 참조). 그리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타락한 인간 아담과 이브는 에덴에서 쫓겨나 죄의 영향력(consecuencia) 속에 살게 되었지만 그 후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사역은 창3:15절부터 시작되는 원복음(proto tipo evangelio), 동물의 가죽옷(창3:21), 그 후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 이삭의 구원을 위해 미리 준비하셨던 “하나님의 어린양(창22)”, 그리고 출애굽기에서 출애굽 시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하신 구속의 “유월절 어린양” 등, 그야말로 인류타락 이후의 하나님의 사역의 가장 큰 촛점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구속사역(ministerio de salvación), 영적 회복사역(ministerio de restauración)이 아니던가. 이 사역은 인간이 자신의 연약함과 한계로 인한 죄를 부끄러워 하거나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늘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하나님께 늘 아뢰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대가를 지불하며그 도우심을 받을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식의 영적 교제의 회복에 있는 것이다. 만일 그런 영적교제가 늘 회복되어 있었더라면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을 버리고 애굽으로 내려 가지도 않았을 것이며 있는 그 곳에서 사랑과 전능의 하나님으로부터 필요 충분한 복을 받으며 삶을 영위할 수 있었을 것이고 이번처럼 출애굽과 광야의 경험이 별도로 필요 없었을 것이다.

- 그리고 출애굽기에서는 그것의 구체적인 방법으로 예배(adoración)를 공식적으로 명하셨고 그 예배가 출애굽기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다. 그 예배의(영적교제) 회복을 위해 하나님께서 오래전부터 모세를 부르시고 훈련하셔서 사용하고 계시고 또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최소한 예배하는 백성으로 변화되도록 하시기 위해 오래전부터 모세를 부르시고 훈련, 사용해 오셨고 모든 권위와 능력을 주셨는데 그런데 막상 그를 돕기 위해 조력자로 임무를 부여받은 아론은 그가 육신적으로 모세의 친형이라는 자존심 때문에, 아니면 지도자 자리가 탐이나서(?) 지금 완전히 모세의 가장 큰 원수로 돌변한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 모세를 지원하는 하나님께도 반역자가 되기를 서슴치 않은 것이다.

- 그렇다면 이 역시 영적으로 가장 기본적인 하나님과 사단의 싸움의 본질속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별 수 없이 끼어들어 사단으로부터 이용당한 셈이다. 이제 진정한 싸움은 모세와 아론의 싸움이 아니라 모세를 빙자한 아론의, 사단의 방법을 의지한 하나님에 대한 영적 싸움인 것이다. 만일 여기에서 사단이 이긴다면 그 효과는 일석삼조(하나님의 이름, 이스라엘, 모세의 이름에 결정적으로 해를 가하는)인 셈이다. 이렇게 사단의 도구가 된 아론은 인간적 방법으로(정으로)는 일시적으로 그렇게 모세를 괴롭게 하고 모세를 통해 이루어진 업적을 붕괴시키며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거룩하신 뜻을 무력화시키고 이길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다만 인간일 뿐이고 덤벼봐야 자업자득, 사필규정인데.. 그래서 하나님께만큼은 겸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렇게 하나님까지 대항한 것이다. 조용하고 겸손하며 어떤 어려운 상황에도 조금도 두려워함 없이 바로 앞에서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명하신 대로 모세를 도와(?) 임무를 수행해왔던 아론이 갑자기.. 졸지에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그것은 그 속에 들어와서 그 속에 역사하는 사단이 아니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싸움 역시 영적 싸움이다. 그러므로 그 해결 역시 인간 아론을 죽여 버린다고 모든 문제가 끝나는 것이 아닌, 인간 아론 이상의 문제가 있고 그렇다면 본래 에덴동산에서부터 인간을 유혹하고 자신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여 하나님과 원수되도록 인간 속에 최초로 자신의 방법의 죄를 끌고 들어왔던 그 사단(우리 인간의 원수)의 같은 같은 방법으로 무식하게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염시킬 이 영적 시도(거짓말, 위협)를 물리쳐야 하는 것이다. 

- 그리고 무식 용감해서.. 늘 사단의 앞잡이 역할로 전락하는 인간.. 그 인간을 하나님은 인내하시며 비록 죄인일지라도 죄를 뉘우치고 깨닫고 돌아오도록(겔33:11) 최소한 마지막 기회를 주시는 분이심을 배우면서 실패를 통해서 더 성숙해 져야 하는 것이다. 그 인간이 모세의 친 형이든, 대제사장이든, 왕이든, 대통령이든.. 누구이든.. 인간은 다만 사랑의 대상인 인간인지라 설령 그 인간이 아벨을 죽인 가인일지라도 계속 참으시고 보호해 주셨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고 특별히 하나님이 사랑했고 사용해 오셨던 사람은 그 당대에 심판받아 멸절하는 비참한 자리까지 쉽게 보내지 않으시는 것을 성경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아 왔던가.. 음.. 기드온, 솔로몬, 유다의 역대 왕들 가운데 소위 선한 왕으로 분류되는 여호사밧 등.. 그래서 본인들은 생명을 부지했지만 그들로 인해 후에 자식들은 떡이 되게 만든 자들.. 결국 그들도 다 같은 사람들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아론이 범죄할 때 아론도 인간이기에 잠시 하나님이 아닌 다른 면을 보는 순간 일어날 수 있는 그런 본질적인 면을 보시고도 그래도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당신의 성품의 본질인 공의와 사랑의 최후의 정점에 이르기까지 참으셨을 것이다. 정녕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고, 또 사랑하시기에 그를 가슴에 품어 치유하고 가르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다.

- 다만 출애굽기의 저자(모세)는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을 알기에 율법(선악과)이 꼭 필요해서 주신, 또한 공의의 하나님이신지라 그 법을 범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자업자득, 사필규정적인 심판이 있을 것을 다시 첨부해 놓은 것이다(출32:34-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출33:19-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 대제사장이 되는 사람이 그렇게 황당한 일을 저지르고 계속해서 문제를 만들어 내는 문제성 있는 사람이어도 좋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제사장이라는, 결코 스스로 완전할 수 없는 다만 회복의 대상에 불과한 한 인간의 공과가 하나님보다 선행하거나 나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에덴의 타락 이후 인간은 그가 누그이든, 모두 죄인이며 용서의 대상일 뿐이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먼저 지속적인 하나님의 죄 용서가 없이는 결코 스스로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가 실상인 것이다. 혹 그 인간이 실수를 덜하거나 더하기 때문에 더 좋고 나쁘고 하는 식의 인간적 평가는 하나님의 거룩하심, 특히 인간의 죄를 근본적으로 덮으시고 용서해 주시는 완전한 사랑을 착각, 무시하는 행위이며 그런 영적인 부분(내면)이 행위적으로 실수하며 완전치 못한 것(외면)보다 훨씬 더 치명적인 것이다.

- 정말 아론은 나쁜 종류의 인간이었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래서 묵상을 계속할 필요가 있다. 다만 그는 연약했으며 비겁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겸비할 줄 알았고 자신의 의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살 줄 알았던 사람이었다. 그것은 한 번 자신의 목숨을 내 걸고 하나님과 형 아론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는 모세의 기도에 의해 용서 받은 이후에 더 겸손하게 된 것, 또 그의 두 아들들이 방자해서 율례를 지키지 않고 하나님이 지시하시지 않은 다른 불로 분향하다가 제단에서 나온 불에 타 죽었을 때에 모세의 훈계의 말을 듣고 더 이상 항의하거나 토를 달지 않고 다만 잠잠했던 점 등에서 드러난다. 또 그 후 미리암과 함께 지도자 모세를 비방하다 한 번 혼줄이 나고는 모세에게 겸손히 그의 잘못을 고백하고 모세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할 것을 부탁한 것이 그것이다. 여전한 인간적인 연약함과 한계성을 깨달으면서..

- 그것은 하나님께서 제사장이 될 사람들로 레위 자손들을 말씀하셨고 모세가 그렇게 맡겼음에도 불구하고 제사장직 수행에 앞서 시행해야 할 제사장 취임을 위한 성결예배를 먼저 하도록 하신 이유에서 볼 수 있듯이 제사장은 먼저 자신의 죄를(인간적 연약함을 포함) 성결케 하는 의식(회개의 기도)을 행한 후에야 비로소 남을 위한 중보의 사역인 제사장 사역을 수행할 수 있게 되는 것에서 인간 자신을 내려 놓고 감당해야 하는 일임을 보여주는 점에서 더 당위성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아무리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고 일년에 한 번 대 속죄일에 백성의 죄를 위해 지성소에 들어가 중보의 기도를 드리기 위해 들어가야 할지라도 반드시 그 전에 먼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성결 의식을 행하고야 들어 갈 수 있는 것이며, 혹시 그렇게 하고 들어 갈지라도 그가 하나님의 원하시는 수준이나 상태에 들지 못해(온전히 성결하지 못해) 지성소 안에서 죽고 사는 것은 그에 달린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의 주인이시며 최종 결정권자이신 오직 하나님 한 분께만 달린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른 사람들은 아론처럼 금송아지를 만드는 최악의 죄도 짓지도 않았는데 레위지파의 칼날에 쓰러져야 하고 그 보다 더 악한 죄질인 인물인 아론의 죄는 그가 하나님을 섬기는 성직자이기 때문에 무조건(?) 쉽게 용서받을 수 있냐는 것, 결국 하나님도 불공평한 분이 아니냐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적어도 이런 본질적인 죄의 문제를 인간의 육신의 옷을 입고 하나님을 섬기는 주의 종들을 상대로 인간적으로 비판하는 것과 함께 그의 배후에서 그를 부르시고 지금까지 거룩할 수 없는 인간을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으로 씻으시며 거룩하게 사용해 오신 하나님을 비판하는 것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말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두 번씩이나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던 다윗이 사울을 역시 하나님께 택함 받은 종이라는 것 때문에 죽이지 않은 것은 참으로 지혜로운 판단과 선택이라 생각된다. 

 
- 아무튼 인간적인 면에서의 아론 그의 개인적인 공로(의의 구원)는 계속해서 여지 없이 깨어지고 그 후 비록 역사가들을 제외한 선지자들로부터 부정적인 면에서의 아론에 대한 일반적 언급이 전혀 없었을 지라도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며, 어느정도 성숙의 시간(?)이 지난 후에 후일 같은 레위 지파 족속들 가운데 아론의 인간적인 실수들, 결점들을 보고 비판을 하고 그를 무시하고자 했던 자들로부터의 아론의 대제사장으로서의 권위를 무시하는 내분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께서 표적으로 아론의 지팡이에만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게 하시는 역사를 통해서 그들을 가르치고 또 그런 위대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통치 방법에 대항해서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이끄시는 대제사장의 인간적인 면만 보고 비판한 자들을 땅이 입을 열어 일시에 죽게 하신 것에서 그것은 마침내 더 분명한 결론으로 귀결되어진 것이다. 아론의 지팡이라 표현했지만 이 책의 저자가 모세 자신인 점을 감안하면 넓게는 그것이 모세에게 주셨던 지팡이이고 다만 때로는 아론이 그것을 먼저 사용했고(바로 앞에서), 때로는 모세가 사용했던(홍해도하) 것처럼 그들은 그것을 다만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 출애굽이라는 큰 일을 이루시기 위해 주신 것으로 보고 자신들을 겸비하며 그 지팡이를 비록 아론이 던졌을지라도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을 본 것처럼 이번에도 그 지팡이를 누구의 지팡이이냐는 어리석은 질문을 하지 않고 그 지팡이는 하나님의 지팡이이며 하나님께서 아론을 택하시고 아론의 지팡이를 가져 오라고 명하셨기 때문에, 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 대상이 누구일지라도 그렇게 될 수 있는 믿음이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하나님께서도 그 지팡이의 인간 주인이 누구냐는 점 보다는, 오히려 그 지팡이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가 그 지팡이와 지팡이를 받은 사람을 거룩하게 하시고 초자연적 능력을 행하게 되기 때문에 아론처럼 금송아지를 만들어 이스라엘을 멸망의 길로, 세속의 조롱거리로 만들어 버리는 자(인간적으로 부족하게 보이는 자)를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요 지도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이스라엘의 장로들의 대항 역시 그 보다 더 크시고 본질이신 하나님의 선택적 사역과 방법에 대한 간섭이 아닐 수 없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결국 지도자가 누구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 지도자가 과연 자신의 의, 공로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이냐 아니냐에 따라, 또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다니엘의 세 친구가 느브갓네살의 금신상에 대해 절하지 않음으로 인해 풀무불에 던져질 위기에서 그들을 인간적으로 사랑하는 왕이 지금이라도 한 번 절만하면 살려주겠다는 마지막 말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풀무불에서 보호해 주시겠지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이 아닌 다른 우상에는 결코 절할 수 없다”는 단호한 자세를 보일 때에 하나님께서 풀무불에 던져진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영적인 일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된 것처럼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고 순종하는 믿음에 의해 결정되어야 할 문제임을 보여 준다. 또 같은 이유로 그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는 왕(제도)을 세우기를 원할 때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과 일치하는 것이고 그 점에 있어서 오늘날 목회와 선교의 상황에 있어서도 그 본질만큼은 결코 변함이 있을 수 없다 생각된다.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으로서 후손들에게 본이 되지 못하는 최악의 경우라는 것을 깨닫고 그 금송아지를 만들고 음란하게 섬긴 죄에 대해 이런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십계명을 받을 자격조차 없는 것으로 판단, 그 십계명이 새겨진 두 돌판을 던져 깨뜨리고 또 금송아지 상을 음란하게 섬긴 백성들을 금송아지 상을 깨드려 갈아 그 갈아진 것을 다시 물에 타서 마시게 한 것, 또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 편에 진정 있기를 원하는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을 구분하던 모세를 옳게 보고 레위지파 자손들이 그 금송아지 상 숭배에 결정적인 선동을 한 사람들을 칼로 살해하였으며 그 숫자가 3천 명에 이르게한 사람(모세)이 그 모든 원인이 된 사람이 친형 아론이기 때문에 그는 비록 자신이 중보기도하다 대신 벌을 받아 죽더라도 형만은 살아야 한다는 논리에 있어서는 모세 역시 인간이지만 본문(text)과 관련된 하나님의 반응의 의미, 관련된 상황(context)들을 보면 나라도 그런 상황에선 그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잘못된 것일까? 

- 다음으로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은 레위지파가 아론이 아니라 아론이 레위지파라는 것이다. 레위지파는 레위의 자손들이며 제사장 봉사를 하는 사람들도 당연히 레위의 후손들로 말해야 할 것이다. 아론은 레위 지파 중에서도 후대의 여러 지도자들 가운데 한 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하나님으로부터 모세의 대변자(portavoz) 역할을 잘 수행해온 훌륭한 지도자가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상상을 초월하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그의 행위는 백성간의 관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진노하게 만든 것이다. 하나님을 진노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해 왔던 모든 아름다운 사역들과 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앞으로의 가능한 미래 사역들을 그 단 한번 행동으로 송두리째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모든 선한 일이 그렇지만 아름다운 사역을 쌓아가기는 어려워도 지금까지 쌓아온 그것을 부숴뜨리기는 단 한 번에 끝장 날 수 있을 정도로 쉬운 것이다.

-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그렇게 하는 사람은 아직 그만한 기본도 안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 볼 수 밖에 없다. 레위지파 전체를 아론이 그랬기 때문에 다 그렇다고 하는 것도 모순이다. 전체 물을 어지럽힌 미꾸라지 한 마리 때문에 전체를 다 잡을 수는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이것은 인간적 연약함과 제한됨 때문에 잘 하고자 해도 실패할 수도 있는 그런 실수와는 차원이 전혀 다른 의도적인 것이다. 더군다나 백성의 지도자가 그렇게 하는 것은 그것은 본인은 물론, 그의 가족과 백성들을 함께 망가뜨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후일 이스라엘이 왕을 세우기를 원할 때 원치 않으셨다. 후에 부득이 허락은 하셨지만 그 왕이 하나님 앞에 진정 겸손하고 섬기는 사람일 때 계약을 세워 허락했고 왕을 세우는 절차도 하나님께서 친히 지정한 사람을 대제사장이 기름부어 세우는 것이고 또 그 왕이 영적으로 타락하고 잘못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선지자들을 통한 경고가 있었고 그래도 겸비하지 않을 때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사 그 왕위가 하나님이 기름부어 새로 세우시는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도록 된 것이다. 시내산을 오른 모세도 그 점이 염려스러워 자신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시내산에 오를 때 모든 권위와 지도력을 형 아론에게 부탁한 것이 아닌가. 아-, 우리의 인간 아론은 여기에서 끝난 것이다...

차라리 모세처럼 자신은 말도 못하는 벙어리같은 인간.. 하나님의 거룩하신 사명을 받기에는 자신은 너무도 부족한 사람이라고 고백했던 벙어리(?-실제로 벙어리가 결코 아닌,) 모세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사역을 감당하기에는 차라리 솔직, 정직하고 얼마나 훨씬 더 나은가. 아무튼 레위의 모든 후손들은 여기에 크게 분노했던 것이다. 마침내 그들은 이번에도 칼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그런 역할을 한 자들을 베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아론을 모세는 살리고 싶었던 것이다. 만일 모세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막지 않았으면 아론은 그들의 칼에(자식같은 자신의 레위족속 후손들에게) 그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해되어 죽었을 것이다. 아론이 형이기도 했지만 정녕 하나님의 이름과 사역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세는 영적으로 제사장 반열에도 멀지 않은 것이다. 예수님이 변화산 상에서 함께 하셨던 인물들 가운데 모세가 함께 있는 것은 모세가 가나안 땅에 못들어갔고 죽었기 때문에 모세는 구원도 못받은 사람, 실패한 사람이라고 함부로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동의할 수 없는(물론 모세가 여느 다른 사람들처럼 완전한 사람은 아니었다해도) 필자에겐 그것 하나로도 참 은혜와 기쁨과 소망을 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모세는 제사장과 선지자 이상의(민12:8) 반열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