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그인 | 회원가입 | 최근게시물
자료실

 
작성일 : 16-07-27 12:14
예수 그리스도 영성노트 46 - 예수님과 교육훈련
 글쓴이 : Ezra
조회 : 685  
예수 그리스도 영성노트 46 - 예수님과 교육훈련

  관점에 따라 혹 강조점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성경의 예수님의 사역의 분야를 보면 대강 다음 6가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창조(요1:3)’ – ‘구속(요3:16)’ – ‘교육(훈련 포함)’ – ‘파송 (마28:18-29)’ – ‘동행 인도(마28:20)’ – ‘최후 심판(계19-20장)’ 등이 그것이다. 이 사역의 특징은 결국 계단처럼 위로 오르면서(성장) 동시에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전진-빌3:7-14) 모델, 또한 일련의 한 점진적 과정(proceso progresivo)으로서 구속사안에서 성장과 전진이 있는 전체의 삶과 사역의 모델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특징들은 오직 예수님 만이 갖고 모범을 보이셨으며 오늘날 우리를 위해 행하시는 사역의 특징들이다. 어떤 면에서는 이 부분이 단순한 구원 못지 않게 중요한 주제라 본다. 구원을 오직 믿음으로 받는 다는 기독교 불변의 진리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 받은 성도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예수님이 가르치시고 훈련하심의 모범과 모델로 남겨짐,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처럼, 예수님을 따라 살고 사역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본제에서는 그중에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이러한 예수님의 모든 사역들을 교육, 스승이신 점에 맞추어 보고 영적, 교육적으로 풍성한 면을 보고 묵상 적용해 보고자 한다. 예수님의 교육, 훈련은;

1.선하신 목적이 있는 교육이다. 요10:10절에 의하면 “예수님이 오신 것은 목자로서 양에게 자신의 생명을 줌으로써(생명다해 섬기심) 양으로 생명(영적 생명)을 얻게 하고 그것을 더욱 풍성히 누리게 하고자 함” 이라 밝히셨다 양은 목자가 없으면 스스로 존재할 수 가능성조차 없는 동물이다. 양치는 목자는 연약, 한계적 양들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그 이유는 요10장에서 충분히 볼 수 있고 설명에 분량이 많아지므로 여기서는 중략) 
2. 구속사적 통치 사역의, 가장 적극, 생산적 모델의 풍성한 교육적 통치 방법이다. 양으로 하여금 주님으로 인한 구속과 영생과 그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도록(요10:10)하기 위한 ‘구속 – 교육 – 훈련 - 파송 – 동행, 인도 – 성취’해 가시는 특징의 사역 모델이다. 즉, 선할 뿐만 아니라, 풍성한 삶(사역)이다. 이는 예수님의 사역이 창조이래 만물의 영장인, 그러나 대신관계에서 아담처럼 ‘죄로 타락한 모든 인간, 그래서 죄에 매인 인간을’ 대상으로 함을 의미한다.  신앙의 사람으로서의 출생과 성장, 성장 이후의 예수님의 선한 뜻을 예수님처럼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한 세상에서의 빛과 소금된 섬김의 사역을 위해 계속적으로 예수님과 동행하며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사역을 가장 보람 있게 여기며 사는 것 등 모든 것을 포함한다. 이런 의미에서는 예수님의 교육으로 인해 마치 계단을 오르듯 성장이 있으면서 또한 동시에 예수님의 선하신 뜻의 성취를 위한 계속적 전진이 있는 신앙의 삶과 사역의 전체적 과정이다. 

3. 하나님의 말씀과 주님의 말씀으로 되는 “말씀 중심의 교육 훈련”이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선교지상명령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른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고 하신 것이 이를 대변한다. (1) 먼저 주님의 말씀을 배워 알고, (2) 아는 것을 스스로 실천에 옮겨 경험해보아야 하고, (3)‘성숙한 신앙’으로, (4)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도우시는 ‘성령님과 함께 동행’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것은 말씀 중심적 신앙의 일련 성장 과정이며 주님의 신자를 위한 개인 교육훈련 방법이기도 하다. 말씀 교육 훈련을 해야 정상적으로 말씀 사역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녀도 구체적으로 말씀을 깊이 배우고 훈련받는 일이 없이는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이다. 혹시 될 수 있더라도 세월이 낭비되고 이미 때가 늦을 수 있고 또 모든게 저절로 다 된다면.. 의미도 없다.  또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른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므로 무엇보다 먼저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듣고 배우고 훈련되어야 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을 오래해도 구체적으로 주님께 무슨 말씀을 듣고 배웠는지 모른다면 그래서 믿기 전이나 후나 차이가 없다면 그것은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주님은 구원만 주시지 않고, 반드시 말씀으로 교육, 훈련하시는 분이시다. 또 그 이유는 주님께 친히 배운 주님의 풍성한 영적 삶을 누리도록 하기 위함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아직도 그 풍성함을 모르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민족들)에게 주님께서 우리를 제자로 삼아 가르쳐 훈련해 주시고 파송하신 것처럼 “그 배운 것을 가르쳐 지키도록” 해야 하기 때문(마28:18-19)이다. 

4. 충만한 기쁨의 삶을 지향하는 참 소망의 영적 교육이다. 정상적으로라면.. 세월이 가면서 자연스럽게 매일 주님과 함께 있으면서 배우고 변화 성장하며 준비되어 주님의 뜻에 의해 구원받고 쓰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 결과 심지어는 매일, 순간 순간마다 이 새롭고 또 성장과 성취가 기대되는 긍정, 생산적 풍성한(주님 때문에 있을 수 있는 최고의) 결과가 있을 것이 믿어지고 기대되는, 충만한 기쁨의 영적 삶(빌2:4)이 있는 것도 또한 주님의 교육 훈련이다. 

5. 이 아름답고 능력, 기쁨, 소망이 어우러진 주님의 교육 훈련의 결실을 어둠의 이 땅, 이 세대에 어떤 모습으로든 전해야 할 말씀, 훈련이다. 바울은 롬1:16-17절에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내가 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미칠지로다..” 라고 고백했다. 얼마나 주님의 말씀, 복음의 능력의 은혜가 저절로 충만하게 확신되었으면 그랬을까..  나(우리)같이 강팍한 사람, 마른 막대기 보다 못한 자도 마침내 깨뜨려 거듭나게 하시고 거룩하고 풍성하신 말씀으로 채워 보내시는 분이라면 선교는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못할 것도 없으며 또 마땅히 먼저 믿은 내가(우리가) 아직도 그것을 모르고 죄 중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님이 행하신 것을 나누는 일(가장 보람되고 복된 사역)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말씀 중에는 하나님의 언약(약속)과 예수님의 구원의 복음(최종)의 말씀 차원이 있다. 오늘날 신약 시대에는 예수 복음의 은혜와 사랑의 차원이 가장 아름답고 완전한 것이고 그것이 우리가 전해야 할 메시지이다.  빌립보서(2:5-6)에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말씀과 삶이 있는 교육으로 섬기러 오신 예수님의 사역은 우리를 제자로 부르심, 말씀으로 가르치심(교육), 훈련, 파송, 파송 후 동행 인도, 그것을 최종 결산(심판)하심 등이 일련의 과정으로 함께 가는 가장 귀한 사역이다. 선교지에서 약28년 대부분 신학교육과 철저한 말씀 위주의 제자훈련 중심의 현지인 교회 목회사역을 하다 배운 것은 너무나도 간단 명료하다. 원주민들이 교회에 아무리 많이 와도.. 결국은 말씀으로 오래동안(충분히) 제자훈련을 받고 소수의 변화된 사람들만 끝까지 남고 오직 주님 말씀으로(주님께서 나를 오래동안 끝까지 인내하며 말씀으로 변화시키고 가르쳐 길러 파송하시고 함께 해 오셨던 것처럼 ^^) 그렇게 교육 훈련된 그 사람들 만이 남아 오히려 더 확실하게 진정 아름답고 큰 일을 한다는 것이다. 

6. 명령이며 특권이고 지켜주실 언약의 보증이 있는 교육, 훈련의 말씀이다. (마28:20-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이런 의미에서 주님 말씀을 중심으로 한 교육과 훈련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그러나 진정 우리에게 주님과 세상을 섬길 수 있는 꼭 필요한 기회이고 또 은혜의 특권이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 매일의 이런 교육과 훈련, 영적 교제가 있는 한 함께만 있어도 최소한 뭘 모르거나, 배우고 훈련받은 것이 없어 혼돈과 공허, 어둠의 삶(창1:2 – 하나님의 말씀 사역 이전의 피조계의 현실)을 살지는 않게 된다. 왜냐면 오늘날 선하신 예수님이 그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역을 시작하시고 무한한 사랑과 인내로 성령으로 어떠한 어려움들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함께 해 주시며 결국 그 목적을 완성하시기 때문이다. 

7. 이처럼 예수님의 말씀 훈련사역을 받은 결과는 영적 조명이 있는 ‘질서’(창1:3)이다. 한 마디로, 이 말씀의 영적 조명이 있는 질서속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모든 빛의 삶이 시작되고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창세기적으로 말한다면 창세기 1:2절의 혼돈, 공허, 어둠의 심연의 무질서로부터 창세기 1:3절의 하나님의 주 안에서의 영적 질서로 변화되는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도 기쁘시고 영광 받으시며 우리도 새로운 차원의 창조(영적)와 함께 주님의 풍성함을 누리는 사역이 가능해 진다.

여기에 바로 하나님의 은혜가 말씀사역으로 본격적으로 깊이 역사하시는 큰 갭이 있다.  그래서 새 날이 시작되었고 하나님의 긍정, 생산적인 차원의 창조 사역의 날들이 6일 동안 계속되면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이 피조되고 그 피조된 사람에게 “생육, 번성, 땅에 충만, 정복, 다스리라” 는 5복을 주신 것이다. 그 중 “정복과 다스림(창1:28)”은 오직 사람에게만 주어진 것이다. 이러한 명령을 받은 우리는 결코 세상, 동물(같이 사는 악한 인간들)들을 영적으로 무서워하고 두려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정복하고 어떻게 이 자연세계(일차원적-물질, 육신적)를 다스려야 할까? 하나님의 창조의 아름다운 섭리와 모범으로 완전하게 우리를 창조하신 그 모범을 따라 자연세계와 움직이는 생물들(조류, 어류, 동물들)을 다스리라는 것이다. 물질세계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하나님의 창조, 통치의 원리를 깨닫지도, 행할 수도 없는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원리로 지배되는 세계를.. (영적으로 죽은 세계, 또는 영적 상태가 이미 그정도로 타락한 인간들의 모습).  어떤 사람이 예수를 믿고 교회를 오래 다니는데도 실제 삶은 아직도 일반 세상 사람들과 같은 모습으로 살고 정체, 무결실(좋은 실제 삶의 간증이 없는)의 사람이 그런 경우일 것이다.

만일 제자들 안에, 또는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예수님의 방법이 다르고 정말 싫어서 그런 것이라면 그것은 의도적이기 때문에 죄질이 더 나쁜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님의 선하심의 능력과 성실하신 도우심을 거부, 또는 의도적으로 제한하게 되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땅의 악한 사람들처럼 그들이 예수님을 ‘몰라서’ 그랬다면 몰라도.. 이미 말씀을 배워 아는 사람들이 잘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아는 바(배운 바)대로 하지 않으면서 겉모습만(외형, 형식) 제자, 또는 교회 멤버로서 교회안에서 나쁜 행위들로 교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자들은 한 마디로, 가라지같은 자 들이다. 가라지는 원수가 뿌린 자 들, 죽을 때까지(심판 때까지) 절대 변치 않는 악한 존재들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런 가라지들을 순수한 알곡을 맺는 사람들이 그들 때문에 다치지 않도록 인간적으로 뽑아 버리지 말고 추수때까지 그냥 놓아 두라 하셨다. 추수 때가 되면 더 분명히 잘못됨이 드러나고 자연스럽게 주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문제는 쭉정이다. 쭉정이도 다른 사람들처럼 주님의 전술한 교육, 훈련 농사를 받았지만 고치지도, 파송, 동행도 하지 않는 현상이다. 가라지들처럼 영적 악의는 없을지라도.. 믿음이 작아 세월따라, 바람따라 흔들리는 물결처럼 연약한 자(insuficiente), 의심하거나, 게으른 자, 그저 자기 편한대로 안주하다 계시록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결코 주님의 성경적 긍정, 생산적 영성의 뜻의 목적을 이룰 수는 없는 자 들이다. 그런 자들은 주님께서 단호히 내쳐 버리리라 하셨다.    일반적으로 단순히 낳아주신 부모보다, 잘 가르치고 길러준(교육) 부모가 진정한 존경을 받는 것처럼  신앙 세계의 그리스도인에게도 역시 참된 교육이야말로 사람을 가장 쓸모 있게 만드는 유일하고 중요한 의미 있는 사역인 것은 재론의 여지 없는 영원 진리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고마운 것은, 우리를 영적으로 낳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끝까지 인내하시며 그 선한 목적을 위해 최선으로 교육, 훈련, 마침내는 주님의 훌륭한 도구로 사용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으로부터 낳고 선하신 목적의 교육 훈련으로 자란 우리는 당연히 지금까지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해주신 것처럼 이제는 우리가 주님께로부터 배운 말씀 교육과 훈련으로 이웃과 세상을 섬겨야 할 것이다(출19:5-6 제사장 나라/ 벧전2:9 왕같은 제사장들 – 제사장은 섬기는 사역의 사람들).

구약에서 이스라엘은 이미 하나님의 언약과 그 언약의 축복을 받고도 그 복을 자신들만 이기적으로 누림으로써 스스로 부패했고 실패했으며 예수 안에서 신약 이방 세계로 전이되었다.  신약에서는 비록 종말이 임박한 상황이지만 마지막으로 그 복을 전할 기회가 아직 계속 주어지고 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향해 예루살렘 길을 떠나실 때 주변에서 주님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불쌍히 여기며 우는 여인들에게 하신 말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너희 자녀들을 위해 울라(신앙교육 부탁)”고 하신 말씀은 이런 면에서 의미 심장하다. 이런 식으로 이 여인들의 자녀들이 지금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내주고 있으며(그들의 자녀 교육의 결과) 앞으로도 그런 일은 계속될 것임을 아시고 자녀들을 바로 교육하는 본질의 중요성을 말씀해 주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나님께 복받고 잘 배우고도 그 배운 것을 행하지 않고 자신들의 아는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교만하고 자신들의 이기적 왕국만을 추구하고 그들에게 교육적 역할을 완전하게 행해오신 하나님을 오히려 욕되게 함으로써 망했던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겠다.

베트남에서 최근 국가교회로 등록하라는 명령을 거부하는 교역자들 100여 명이 최고 15년 징역형을 살고 있으며 그 안에서 집요하게 강요하고 아닌 사람들에게는 음식에 독을 타서 중독되거나 죽게 하고 있다 한다. 이스람 국가와 세계정부가 장차 교회를 문닫게 만드는 계획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그 때가 멀지 않을 것같다. 주님께서 때와 기회를 주실 때만 사역이 가능하다. 모든 껍데기는 곧 사라질 것이다. 우리 모두가 아직 기회를 주실 때에 더 힘을 내어 이 말씀 훈련사역에 임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