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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2-10 17:09
요한계시록영성노트 5 - 요한계시록과 말(horse)들
 글쓴이 : Ezra
조회 : 7,544  
요한계시록영성노트에서 계속해서 논란거리인 다음 사항들을 묵상해 보았다.  요한계시록은 왜 많은 상징들을 사용해서 기록했는가? 요한계시록에 말의 등장 횟수는 모두 14번(6:2, 4,5,8; 9:7,9,17; 14:20; 18:13; 19:11,14,18,19,21절). 성경이 기록된 시대가 오래 전 임과 계시록이 많은 상징들을 사용하는 책 임을 고려해 보면 그리 이상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특히 계시록이 성도를 중심으로 한 사단과 예수님과의 최후 영적전투에 많은, 그 당시 사람이 아니고는 이해하기 어려운 영적 상징들을 많이 다루기 때문에 더 그럴 것이다.
 
상징들을 사용한 이유                                                                                               
당시에 극심한 로마제국의 기독교 박해 속에 있던 상황에서 기독교가 황제가 아닌 하나님 만을 경배하고 하나님의 나라(천국복음)의 메시지를 전파하며 항간에는 그들이 숨어서 야만인처럼 남녀들 한 곳에 모여 예수의 피와 살을 나누는 예식(성찬식)을 한다는 둥의 소문들이 무성해서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원수로서 박해를 하는 상황,               
                                                                   
이미 사도요한을 제외한 모든 다른 사도들이 같은 이유로 순교한 상황, 계속해서 누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이 알려지고 체포되면 잔인하게 죽음을 당하는 상황에서 예수를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종말심판을 받고 지옥불에 던져질 것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복음이 널리 퍼져 로마제국 내에까지 많이 들어와 있고 제국이 그들을 박해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신앙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무덤이나 은밀한 곳 등으로 숨거나 아니면 자기들끼리만 아는 상징, 모습 등을 통해서 모이면서도 신도 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상황 가운데서도..  예수님의 사도요한에게 본대로 책에 써서 소아아시의 7교회들에 보내라 하신주님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                                     
                                                                           
이런 상황들에서 사도 요한이 부득이 많은 영적 상징들을 사용해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것은 혹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읽어도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는 이상한 책에 불과하기 때문에 로마정부에서 기독교를 로마정부에 반감을 가진 종교로 오인하게 않게 하면서 동시에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누구나 익숙하게 잘 아는 이러한 상징을 사용하여 이해하도록 주의 깊게 이런 상징들을 사용하여 책을 썼을 것은 이해가 되고도 남을 만하다. 특히 그가 종말에 이루어 질 종말심판에 관한 환상, 하나님의 보좌에 대한 환상, 기타 인재앙, 나팔재앙, 대접재앙 등 세 가지 재앙들, 바벨론의 최후 함락, 그 후에 본 환상들, 새 하늘과 새 땅 등은 이미 인간의 세계를 넘어 영적인 세계와 현상들이 내용이기 때문에 인간의 언어와 능력으로 그것들을 대하고 특히 그것을 하나의 언어로 다루는 데에는 차라리 불가능한 것을 겨우 상징들을 통해서나마 겨우 그렇게 기록했을 것이다. 

왜 말(馬)인가?
말은 성경에서 빠르고 높고 강한 권력자의 권위를 상징한다. 칼과 창, 방패, 말 등으로 싸우던 교통과 말이 전쟁의 수단이었던 당시의 상황에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 백마(白馬)는 흔치 않은 지도자나 지휘관들이 타는 말로 상징된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에서 다루는 상징들은 주로 하나님과 천사들, 예수님 재림과 심판에 관한 상징들이기 때문에 공부를 하면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사단은 무슨 짓을 하는가?

문제는 이런 상징들을 사단도 위장하고 따라 하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라면 모든 것을 다 흉내내서 외형적으로나마 그럴듯 하게 마치 자기가 하나님인 것처럼 속이고 성도들을 유혹하는 데에 전문적이다. 그 일에 도사다.^^  그러면서 성도들을 혼란시키고 타락하게 만들어 결국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하고 최종적으로는 교회 안에까지 들어와 오히려 믿는 사람을 예수 믿지 못하게 만든다(거짓 예수– antiChrist/ 거짓선지자 –false prohet). 세상 정부가 교회를 박해하지만 또 그들은 교회 안으로 들어와서 신자행세를 하면서 성도들을 더 본격적으로 집요하게 최종적으로 유혹하며 교회 안에 나타날 자들이 그들이다. 그의 조종을 받는 교회의 지도자들, 교사들, 형제들이 교회 안에서 활동한다. 그들은 사단의 조종을 받기 때문에 거짓말의 명수이고, 또 심지어는 사단이 주는 초자연적 능력도 행한다. 그러면서 때로는 달콤한 말로, 때로는 위협하는 말로 성도들을 위협하기 때문에 정말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로 아는 사람들이 아닌 많은 사람들을 타락, 배역하게 만든다. (이것이 오히려 육체적인 박해보다 가장 위험하고 악랄한 효과적 공격방법 - 오늘날의 좌파, 종북들과 유사^^). 

예를 들어 계시록 6:2절에 나타나는 흰 말 타고 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는 자가 누구냐는 문제에 대해 그가 계19장 11절의 백마탄 자와 같은 사람이냐 아니냐는 문제 하나에 그것을 바로 대답하지 못함으로써 그것을 바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혼란을 가져 온다. 어떤 사람은 그가 예수님이다. 다른 사람들은 사단이다. 기타 또 다른 사람들은 천사다, 또 다른 사람들은 종말시대에 마지막으로 최선다해 복음을 전해 이기려는 성도들이라 하는 등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혼동된다.
 
다행스러운 것(?)은 한글 개역성경 성경에서는 6장의 흰 말과, 19장의 흰말을 백마로 표현했다. 그러나 영어성경이나 원어는 모두 white horse, “hipos luekos ”(in Greek white horse) 같은 말이다. 흰색의 말로만 보면 결코 그것이 예수님이 타신 말인지, 사단이 탄 말이지 구별 불가하다. 말이 아닌 그 탄 사람(자 - 사단인지), 그가 무슨 일을 하며 무슨 의도가 있는 지를 주의 깊게 살펴 보아야 하는 것이다.
6:2절의 ‘그 말 위에 타고 이기고 또 이기려 하시는 자’는 누구인가?

1) 그는 예수님은 아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그가 예수님이라는 사람들(박윤선)과, 또는 사단(또는 적그리스도 – Hal Lindsey, W. Handriksen, 조용기, 이동원, 노우호(직접 그렇게 말하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지칭)이라는 사람들로 크게 나뉘어 있다(요한계시록주석총람 참조-인터넷자료). 상식적으로, 계6장이면 아직 본격적으로  사람들을 죽이고 심판하는 나팔재앙과 대접재앙 단계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그 이전인 초장부터 이런 엄청난 혼돈이 있는 것은 정말 너무나 놀라운 일이다(어떻게 아군을 원수, 혹은 원수를 아군으로 초장부터 혼동하고 들어갈 수 있는가? 그들의 착각이나 멍청한 말을 듣는 많은 사람들은 또 어쩌고?).

(1) 왜? 아직 6장에서는 최조 심판주로서의 예수님이 등장하실 때가 아니다. 예수님은 최종적으로 19:11절에서는 “백마타고” 오시며.. 거기에 묘사되는 백마 타고 오시는 분에 대한 설명들은 분명히 예수님을 구체적으로 나타내기 때문이다. 
(2) 6:2절의 흰 말은 각각 색깔이 다른 네 마리 말들(백, 적, 흑, 청황색) 가운데 하나로서 각기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다른 말들과 기능상 동격의 위치에 있다. 그들은 지금 상위천사(그룹들 중 하나)의 명령에 복종하고 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이라 할 수 없다.

(3) 그 말들로 시작되는 재앙이 성도들을 공격하는 것이 아닌, 자연을 파괴하는 다만 예수님이 7개의 각각 다른 인들을 떼고 각 인들의 봉인이 열려질 때 나오는, 임무가 다른 말들이다. 당장 악한 사람들을 다 멸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더 이상 콧대 높은 육신적 삶을 유지할 수 없도록 하는 자연 재앙으로 큰 고난에 빠지는 악한 사람들을 그런 방법으로 혹시라도 회개하고 주님의 발 앞에 돌아오도록 하기 위한 마지막 기회를 주는 임무인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4) 사단도 아니다. 그가 만일 사단이라면 그의 면류관에 일반적 호칭처럼 왕의 면류관(디아데마)를 썼을 것이고, 또 활도 가졌지만 화살도 가졌을 것이며 그것을 쏘아 많은 사람들을 죽일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런 왕의 왕관도 없고 화살도 없으며 사람들도 죽이지 않고 있다.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썼으며 또 이기고 또 이기려 하지만.. – 활을 가졌으나 화살도 없고 쏘지도 못한다. 그런데 화살이 없으니 사람을 죽이지는 못하고 다만 이기려 한다. 무엇으로? 자연을 파괴함으로.. 어떻게?  팀처럼 그 뒤를 따라 함께 나오는 다른 말들로..

(5) 면류관을 썼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이 최종적으로 쓰시는 면류관(디아데마- 왕이 쓰는  면류관 – 계19:11절, 다만 12:3 사단을 나타내는 용(Dragon)도 7면류관, 디아데마를 썼고, 13:1절에서 바다에서 나온 짐승도 10면류관, 디아데마를 썼으나.. 그러나 그들은 하나는 사단, 하나는 짐승으로 명시되었으므로 100% 예수님이 아닌, 사단의 종자임을 쉽게 알 수 있다)이 아닌, ‘스테파노스’(왕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쓰는 면류관- 주로 전쟁에서 승리하는 사람, 어떤 일을 잘 수행한 사람에게 왕이 주는 면류관)를 썼기 때문에 역시 그가 예수님도 아니고 사단도 아님을 의미한다.  우리 말에는 다 같은 왕관이나 헬라어 원문에는 아닌 것이다. 요는 흰말, 디아데마 면류관보다도 그것을 사용하는 자가 어떠하냐, 무엇을 하느냐는 점이 더 중요한 것이다.   

2) 흰 말에 탄 자는 사단도, 그가 부리는 수하들도 아니다.

(1) 사단도, 그가 부리는 수하들도  아니다. 왜냐면 그가 사단이라면 각기 큰 세력을 가진 네 말의 말을 몰고 와서 한 명도 못 죽이고 자연만 파괴하고 겁만 주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사단이라 이름으로 와서 그런 식으로 하면 조롱만 받을 것이다.

(2) 전술한 바와 같이 이 인재앙의 목적은 육적인 사람들을 심각한 자연 파괴로 인해 두렵게 하고 영적으로 하나님을 찾게 하기 위함이다. 이것은 살해나 부정적인 목적이 아닌, 오히려 회개의 기회를 주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사단이나 그의 수하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파괴적인 일과는 전혀 반대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3) 일곱인을 떼시는 예수님의 인재앙 심판에 따라 하나씩 인을 개봉 함에 따라 각기 다른 절차적 임무를 수행하는 하나님의 천사들일 것이다.

(1) 성경에서의 천사는 초자연적 능력을 가진 존재들이다.

(2) 지시에 따라 절대 복종하며 지시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존재들이다.

(3) 자주 하나님의 명에 의해 하나님을 섬기는 의인들을 인도, 돕고, 축복하는 역할(게시록에서는 성도들의 기도의 향을 하나님 보좌 앞의 금대접으로 올려 그 양을 채우고 그 양이 채워질 때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재앙도 내리게 하는 역할을 함)하지만,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을 처벌하는 역할도 한다. 특히 마지막에 사단을 잡아 묶어 지옥불에 던지는 것도 역시 천사적 역할이다.

(4) 그들의 인재앙에서의 임무는 하나의 팀처럼, 네 마리의 말들의 각각의 사역들이 수행되도록 하여 전체적 목적을 이룬다. 즉, 흰 말의 하는 일을 다른 말들이 하는 것과 함께 전체적 같은 차원의 맥락으로 보아야 한다. 

(5) 다섯째 인을 떼실 때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각각 희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도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6:9-11)”는 구절은 그들도 하나님이 악한 세상을 단번에 심판하지 않으시고 더 구원하실 목적으로 지연하고 계심을 알고 속이 이루시도록 탄원한다. 인재앙이 사단이나 그의 종자들이 하는 일이 아님을 다시 한 번 명백하게 보여 준다. 그러한 심각한 하나님의 진노 중에도 순교자들을 향한 위로와, 또 이러한 간접적, 점진적 심판의 진행이 지금까지 여러가지 이유들로 안믿던 사람들에게 오히려 이로 인해 혹 돌이켜 회개할 기회를 주도록 하시는 배려 임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6) 물론 사단도 일시적으로 성도를 혼돈시킬 목적으로 광명한 천사처럼, 아니면 교회 안에서 선한 양처럼  위장하는 역할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목적은 궁극적으로 역시 양을 죽이거나 빼앗기 위해서 그런 행동을 할 뿐이다. 결코 참 선한목자이신 예수님의 역할처럼 양으로 영생과 풍성함을 누리도록 자기 목숨을 주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일시적 위장으로 광명한 빛과 흰색처럼 사용할 수는 있더라도 그것을 보고 교회에 기록하여 주는 사도 요한의 입장에서까지 예수님과 전혀 차이 없는 흰색처럼, 마치 사단이 선한 자와 전혀 차이 없는 것처럼, 그를 나타낼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그의 글을 읽는 많은 성도들을 큰 혼란에 빠뜨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고 사단보다 멍청하고 악한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그 순교자들의 탄식에 대한 자상한 설명이 이어 추가 되었을 것이다. 

계시록에 흰말(white horse)들의 등장 횟수는 모두 세 번(6:2 흰말; 19:11 백마-예수님이 타신; 19:14-예수님을 따르는 하늘의 군대 백마 절 등)이다. 흰말과 백마는 결국 같은 말이지만.. 한글개역성경에서 탄 자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는 말은 흰말(white horse-6:2), 예수님이 타신 말은 백마(white horse-19:11)- 원문에는 다 white horse(백마)로 번역했다 - , 하늘의 군대가 탄 말들이 백마(white horses-19:14)인 것 등으로 표현한 것은 흥미롭다. 19장에서의 백마는 예수님이 타신 말, 또 예수님 따르는 하늘의 군대로 묘사되어 있으므로 문맥상 이해의 문제가 될 것이 없지만 본문 6장의 흰말은 그 탄 자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기 때문에 잘못 해석하면 큰 오류가 될 수 있어서 주의가 요청된다.

사실 말은 그 말 위에 탄 사람의 역할을 돕고 섬기는 역할이므로  더 중요한 것은 말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말을 탄 사람, 그가 누구냐, 그가 무엇을 하느냐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를 사단, 천사, 예수 그리스도, 심지어는 마지막 시대에 영적 전쟁을 치르는 성도들 이라고 하는 등 그 흰말 위에 탄 사람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상황이 180도로 완전히 다르게 나뉘기 때문에 이 문제는 결코 그냥 대충 넘어가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일단 계시록에서 등장하는 말들 중에 다른 색 말들은 예외로하고 흰말로 표현된 것을 주목해 보자. 흰말(또는 백마로 표현된 것을 포함해서)은 모두 4번 등장한다. 흰말은 6장 2절에서 단 한 번 등장하고, 백마는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의 장인19장에서 등장한다. 19장의 경우는 그 구절에서 말을 타신 분이 “예수님”이라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논란이 될 수는 없다. 유일한 논란 부분은 인재앙 첫째 인을 개봉할 때 등장하는 흰 말이다. (사진은 - 인터넷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