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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1-16 15:25
선교묵상 4 –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글쓴이 : Ezra
조회 : 6,554  
세상의 구주이신 주님의 오심, 구속하심, 훈련된 종들을 보내심(파송) 때문에 세계선교가 가능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19절)’..라는 말은 그 최종 사역이 된다. 무조건 아무나 그냥 가라는 것이 아니라, 구속받고 훈련된 사람들이 가야 함을 말해 준다. 주님의 공생애 초기 사역은 천국복음 전파, 축사, 치유, 모든 연약함을 고치심, 또 초자연적 능력을 행하심 등 이었다. 그러나 후기사역은(최소한 마16:21절 이후로는) 대중사역 대신, 소수의 핵심적 역할을 감당하게 될 제자훈련으로 집중되며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선교지상명령을 주시고 승천하심으로 마쳐진다. 여기에서 ‘그러므로’란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으나.. 전술한 바와 같이 선교적 맥락에서 보고자 하며 그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묵상해 본다.

1)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18절)”

이 18절이 다음19절의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란 말씀의 이유와 근거가 된다. “하늘의 모든 권세”란 이 일에 대한 창조, 통치의 주이신 하나님으로부터의 초월적 영적 권세를 의미한다. 땅의 권세란 이에 대조되는 말로서 하나님에 대적하는 사단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쫓겨나 세상 지상 공중권세를 쥐고지배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주시는 더 큰 권세,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권세로 옛 뱀 사단의 머리를 깨뜨리고 이기신, 이미 이기셨지만 그 이기심의 원리를 따라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이름으로 이기게 하시다가 최후 심판과 함께 영원히 승리하실 주님의 권세(주님께서 이기신 방법의 권세)를 믿고 나아가는 제자들이 -인간적으로는 부족하고 연약하며 한계적인 인간일지라도- 같은 방법으로 또한 최종 승리할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사복음서에서 말하는 선교의 특징을 볼 때 (1)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방해하는 사단과 귀신들의 활동이 천국복음 전파에 실제 영적으로 가장 큰 장애이기 때문이다. (2) 주님은 마귀의 일(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부득이 선교를 할 수 밖에 없도록 하는 일, 지금까지 특별한 대책 없이 당하고만 있던)을 주님의 오심과 함께 궁극적으로 멸하기 위해 오신(요일3:8) 것이다. (3) 그러나 그것이 최종적으로 마귀(사단)를 멸하는 것은 아직 아닌 것이다. 비록 벧전5:7절의 말씀처럼, “사단이 그가 자신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마치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 온 세상을 헤메고 열심히 활동하며 위력을 떨치고 있을지라도” 주님께서 장차 재림하셔서 행하실 ‘최후 심판의 때’는 아직 아니기 때문이다. (4) 그래서 성도는 예수님의 오심을 기점으로 예수님의 권세(축사, 치유의 권세)로 영적 전쟁을 벌이며 순간 순간 주님을 의지함으로써 승리할 수 있을 뿐이다. (5) 이것은 창3:15절 말씀의 여자의 자녀들과 뱀의 후손(또는 뱀-사단, 귀신) 사이에 뒤꿈치가 물리고 머리를 밟혀 깨지는 심각한(!) 영적 전쟁이 최후 심판의 때까지 계속될 것을 말해 준다. (6) 물론 예수님께서 오셔서 예수님의 주요 4-5대 사역들(천국복음전파, 축사, 치유, 모든 약함을 고치심, 초자연적 능력을 행하심 등) 가운데 중요한 하나였고 실제로 축사하심으로 가는 곳마다 필요할 경우에는 축사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최종 심판은 최후의 재림심판의 시기로 미루어 진다. 이것은 누가복음4:13절, 예수님의 광야 시험이 승리로 끝날 때에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동안(잠시) 떠났다(눅4:13)’는 말로 대변된다. 아직 영적 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의미하며.. 다시 이런 저런 모습으로 마귀와 귀신들의 사역이 계속될 것 임을 말해 주는 부분이다.
 
다만 본제의 제목상 더 중요한 것은, 그 다음 구절인 눅5:1절에서부터는 “예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돌아 가신 것이다. 그 후의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은 물론 성령과 함께 하는 전적인 능력사역이었다. 축사에 관해서는 전술한 바의 이유들 때문에 계속 영적전투를 치르며 주님의 이름으로 쫓아내며 계속 되겠지만.. 이것이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더 의미 있는 차이점이다. 귀신의 다양한 의도나 방법, 능력의 정도가 변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이 성령의 권능을 힘입으시고 능력으로 공생애 사역에 임하시게 된 것이 더 중요한 점인 것이다. 이때부터의 갈릴리에서의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은 한 마디로, 성령의 권능(능력 – 능력의 말씀전파, 축사(축귀), 치병, 초자연적 이적 행함, 모든 연약함을 고치심 등..)에 의한, 그 능력이 모든 면에 충만한 사역이었다. 누가의 이런 관찰은 성령론적 입장에서 깊이 있게 본 것으로서 다른 복음서들보다 더 구체적이며 흥미롭다.     

공관복음서들에서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주님과 ‘귀신들린 거라사 광인’의 조우(confrontation)와 대화는 예수님과 귀신 사이의 관계에 대한 중요한 것들을 제공한다(예수그리스도영성노트41-예수님의 파송과 축사사역 참조). 거기에서 그가(귀신들린 광인)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큰 소리로 부르짖어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같은 내용을 언급하는 마8장에 의하면 예수님의 오심을 보고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서 소리를 질러 가로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마8:28-29)라고 예수님께 항의(!)한다. 즉, 귀신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왜 오셨고 자기에게 무엇을 하실 것인지를 알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아직 때가 이르다’는 것은 예수님이 최종적으로 귀신을 심판하시고 지옥으로 보내실 때가 있다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인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지금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고 할 정도로.. 귀신의 일에 대해 예수님의 하실 일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귀신의 말이 비록 전에 사단을 중심으로 그의 추종자들(타락한 천사들)의 하나님을 상대로 한, 천상의 반란 전쟁에서 패배한 사단이 지상으로 내어 쫓기고 잠시 지상공중권세를 잡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에서 분리하게 하고자 노력하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축사사역으로 사망권세를 잃고 마지막까지 대항하지만 마지막 주님 다시 오실 때에 그를 추종하는 귀신들과 그 세력에 앞잡이 노릇하던 세상 정부들과 악한 자들과 함께 최종적으로 영원한 지옥 불에 던져질 것과, 주님께서 오셔서 공생애 사역을 하실 때는 아직 그 때가 아니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귀신의 역사를 단번에 파하시고 단번에 멸하시면 그것은 하나님의 예정과 주어진 시간의 뜻을 무시하고 섣불리 하는 행위가 아니겠느냐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하는 말인 것이다. 예수님은 그에게 서 나오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나.. 그는 잠시 대항한다. 그리고 그 귀신 대장은(귀신은 레기온, 즉 군대였으며 거기에는 대장 역할을 하는 귀신, 아마 그를 마귀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즉각 예수님께 협상을 한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예수님과 이렇게 이런 때에 조우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자신들을 멀리 쫓아 버리지도 말고 저 돼지떼에 들어가게 하소서..라고 부탁한 것이다. 예수님이 그런 권세가 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로서는 최선의 협상을 했을 것이다.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에 의해 통제되는 사단(욥기서처럼)을 제외하고는 직접적으로 표현된 것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신약과 같은, 보이는 축사사역도 없다. 다만 귀신 활동이 본격적으로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로 잡혀감과 망국의 시기로부터 자유롭게 본격적으로 역사하기 시작하여 신구약중간시대에는 이미 지상공중세력을 잡고 이때로부터 적극적으로 역사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몇 몇 유명한 유대교 교사들의 언급에 의하면 차차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귀신을 멸할 수는 없지만 자신들의 지역에서 쫓아 버리는 일이 축사의 최선으로 인정되던 때라.. 가능한 한 멀리 쫓아 내버리는 것이 상식적이었고 이것을 당연히 귀신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 그런 부탁을 했을 것이다. 그것을 예수님이 허락하신다면 귀신에게는 최선의 결과였다. 왜냐면 돼지떼 속에 들어가서 돼지들이 바다로 내달아 모두 빠져 죽어도.. 영적 존재인 귀신들은 결코 죽지 않을 것이 거니와 잠시 후 예수님이 그곳을 떠나가시면 다시 유유히 그곳으로부터 나와 이전처럼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죽은 돼지 떼의 육신적 손실 자체보다는, 돼지떼 이 천 마리 손실보다 어떤 대가 지불에도 불구하고 한 생명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온 세상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주님, 또 그런 과정을 통해 축사 치유된 사람이 거라사 데가볼리(Deca-police: 침략자 로마가 팔레스타인 통치를 위해 팔레스타인 거라사 지역에 세운 10개의 도시들)에 가서 주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그대로 전파하였다(하나님나라 복음선교)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그것이 사실 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 가다라 지방으로 가시고자 했던 이유인 것이다. 그것을 지금 예수님의 구원받고 변화된 사람이 제자처럼(변화된 사마리아 여인이 사마리아성을 전도하고 그 성이 거의 전체가 예수님을 받아 들인 것처럼) 전도한 것이다. 이제 예수님은 이런 과정을 통해 갈릴리 지역과 사마리아와 북부 시돈지역과 데가볼리 지역을 선교하시고(이스라엘의 모든 지역에 천국복음을 전하시며!) 본격적으로 드디어 유대와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신 것이다.       

여기에서 주님이 주시는 권세의 특징은 앞으로 계속 주님이 선교의 현장에서 천국복음 전파를 위한 보혜사의 성령의 충만한 능력으로 인도되는 권세를 말한다. 그 분은 또한 창조(요1:3), 구속의 주(마1:21)이시다. 그는 분명 하나님에 대한 이해에서deismo(자연신-자연적 통치원리(섭리)에 의해 스스로 운행되도록 맡겨두고 멀리 계시며 더 이상 간섭하지 않는 신)의 하나님이 아닌, Teismo(창조, 주관자이신, ‘살아 계신, 살아 역사하시는’ – 마16:16下)의 주님이시다. 그렇지 않다면? 물론 선교는 불가능하다.

이런 인간의 본질적 필요를 아시고 그 필요를 위한 가장, 최선, 최상의 적극, 생산적 선교영성에 의한 선교를 위해(!) 당신의 제자들을 부르시고 교육 훈련하시고 마지막으로 세상 끝날까지 그들의 선교를 지켜 주시기 위해 항상 그들과 함께 하실 것을 보증해 주시며 보내시는 선교영성 차원인 것이다. 그래서(그러므로) 보내신다. 이것은 우리의 불필요한(in-necessarly) 부담이 아니라, 그야말로 이런 구원의 최대의 사랑의 의지가 가득한 방법으로 나같은 강팍하고 못된 인간은 물론, 나의 가정과 이웃과 나라와 세계를 구원하는 특권적 축복의 통로로서 주시는 것이다. 할렐루야! 그것을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왜, 할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계속 다룰 제목들에서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일단 다음으로 미뤄두고자 한다. 다만 한가지 여기에서 주의할 것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라는 것이 위임하신것이니 그것을 얼마든지 활용(이용)하면서 마음대로 해서는(인간적 방법적으로) 안된다는 것이다. 특히 요즘의 많은 잘못된 자들처럼.. 그 권세를 휘두르고 사단이 좋아하는 잘못되고 비윤리적 영적 방법들 사용하면서 오히려 거룩하고 의로운 선교를 타락하게 만들며 그것으로 자신, 자신의 단체(특히 교단, 교파 등)를 나타내는 데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전술한 것처럼 계속 주님을 섬기고 사람을 살리기 위한 목적에 바르게(거룩하고 의롭게!) 사용되어져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사역을 옳지 못하게 행하는 종들에게 종종 “악하고 게으른 종아” 라는 표현을 사용하신다. 일단 의도가 선하신 주님의 방법이 아닌, 악하면 안된다. “악하다”는 것은 주님께로부터 귀한(사역하기에는 손색없을 정도로 이미 충분히 좋은) 달란트를 받은 종이 받은 그것을 작게 보고 섬기는(세우는) 일(그렇게 해서 주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일)에 사용하지 않는, 조건과 상황을 초월해서 주어진 일에 충성하지 않는 잘못된 영적 자세를 말한다. 극단적 경우지만 마16:16-18절을 잘못해서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면서 교회에서 파는 구원 딱지(indulgencia-면죄부, 요즘엔 몇 년 짜리 축복권도 판단다^^)를 사면 선행이나 중보 필요없이 직접 바로 구원받게 된다면서 면죄부를 팔며 그 돈으로 더 큰 호화스런 성당을 짓던 카톨릭 처럼 최악의 경우까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마6:33절은 분명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그 나라의) 의를 구하라” 하셨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이용해서 그 나라만 구하는 것은 어쩌면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 나라, 예수님의 의와 함께 구하는 일’은 진정 쉽지 않은 일이다. 선교에 있어서 주님의 진정한 목표는 “그 나라의 의(justicia)”를 이루는 일, 그렇게 해서 보냄 받은 종들이 곳곳에서 주님을 그런 바른 방법으로 섬김에 있음을 보여 준다. 다르게(인간적 다른 방법으로) 더 잘 할줄 몰라서가 결코 아닌 것이다. 주님의 때(주님이 원하시는 때), 주님의 방법(의로운 방법)으로 감당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마28:19절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교하실 때에 ‘가르치고 훈련하며 보여주셨던 주님의 모든 방법과 원리에 그대로 충실해야’ 함을 보여준다. 내 제자가 아닌 주님의 제자(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받는), 내 방법이 아닌 주님의 방법, 내 원하는 바대로 하는 것이 아닌, 그들로 하여금 오직 우리가 순종하고 보여주는 주님의 방법(주님 중심)대로 살게 하는 방법으로 선교하는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작금의 세계선교는 -당사자들은 물론 부인한다 할지라도- 대부분은 결론적으로 그렇게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는 그런 자들이 다수가 되어 세력을 이루고 영적 선교를 세속적으로 하면서 설치고(갑질) 있다. 심지어는 그런 주님의 바른 방법으로 선교하는 자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인한 박해를 받는다(원컨대 혹시라도 이것이 내 착각이기를 바란다). 그래서.. 사실 선교의 실제에 있어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주님 방법으로 하기 때문에 핍박과 박해의 대가를 지불하며 천천히 하나씩.. 그러나 확실하게, 결실을 얻는다. 정말 주님께서 성령으로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해주실 것(20절)”을 약속해 주시는 보증이 없다면 소망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30년 가까이 선교를 하면서도.. 늘 자신을 쳐서 주님의 보여주시고 그것이 비록 역설적일 지라도 그것을 축복 격려해 주시는 방법에 위로를 받는 것으로 감사할 뿐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선교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많은 영적 문제들을 야기해 놓게 될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는 다룰 문제들이 너무나 많으므로 여기서는 지면을 아끼고 차제에 다루게 될 다른 주제들에 따라 부득이 본질적인 중요한 것들 부터 자연스럽게 다루기로 한다. 

2.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28:19상)”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가라고 하신다. 그러나 무조건 아무나 가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주님과 함께 있으면서 배우고 훈련되었으며 마침내 이제 주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로 주신, 그 명령을 받는, 그래서 선교의 이런 점을 알게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섬기기 원하는 그 제자들에게 임재 보증의 말씀과 함께 가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 주님을 선교 현장에서 그런 차원에서 항상 모시고 살기 때문에 또한 선교와 함께 우리의 삶은 마침내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잘 훈련되고 헌신된 삶을 살게 된다. 그것은 주님께서 어떤 상황에서든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모든 전도자들의 모든 것, 심지어는 그들의 자손들까지 축복해 주시는 생생한 간증들을 통해서 재확인 된다. 확신컨대, 이는 분명 선교하는 자의 슬픈 헌신과 희생의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할 특권이다. 지금 제자들이 이곳에 있는 자체도 사실은 이전에 예수님께서 부활 후 제자들을 다시 만나주실 장소를 전에(16절) 미리 알려 주셨기 때문(예수님이 “지시하셨던” 장소)에 있는 것이다. 종종 “내가(우리가)” 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주님(/성령)께서 함께 하시며 인도하시며 교제 중에 함께 하시기에 하는 것이다.

같은 의미에서 이런 말씀을 이렇게 해 주시는 주님은 오늘날 성령 안에서 우리의 영원히 섬기며 감사할 선교의 주체이시다. 행13장의 안디옥 교회의 최초의 세계선교사 파송의 예에서 더 분명 하게 나타난다. 예루살렘의 박해를 피해 시리아 안디옥으로 간 안디옥교회의 성도들이 매일 모여 금식하고기도할 때 주의 성령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로 세워(세우심) 선교사로 파송하라고 지시해(파송) 주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어디로 선교하러 가야 할지(구브로- 파송 장소), 무엇을 얼떻게 해야 할 지를 때를 따라 구체적으로 지시해 주셨다(선택, 파송, 공급, 보호, 인도, 격려, 능력주심, 성취 약속 등).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이 선교에 임할 때 앞으로 겪게될 어려움을 이미 아시며 그래서 그럴 경우에 하실 일에 대한 대책도 있으시기에 보내시는 것이다. 우리 종들이 할 일은 오직 감사함으로 순종하는 것 밖에 없다. 주님(/성령-예수님 승천 후 예수님의 말씀대로 성령강림하신 이후)이 선교의 모든 면에서의 실제적 주체자이시다. 그 분이 이 모든 점을 아시면서 “너희(우리)”를 택하시고 사명을 주시며 가라 하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