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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10-06 16:17
선교묵상 7 – 선교 실전 파라독스
 글쓴이 : Ezra
조회 : 3,208  
선교묵상 7 – 선교 실전 파라독스



이번 주 토요일 .이곳 티후아나 저희 교회에서 미주 한 교회의 단기의료선교를 하기로 되어 있는데 공교롭게도 궂은 비가 계속 사정없이 내리네요. 기상 예보에 의하면 이번 주말까지(토,일) 비가 온다는데 이렇게 계속 비가 내리면 비포장인 교회 진입로에 깊은 진흙 지대가 생겨 진입에도 어려움이 있고 의료진료(치료 포함)를 받으러 올 사람들에게도 문제가 될 것이 걱정되네요. 그동안 이 지역은 너무 가물어서 사람들과 모든 들판의 초목들도 비를 기뻐하고 있는데.. 저희는 이 일을 위해 오히려 비가 오지 않도록 기도해야 할지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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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6회에 걸쳐 마28:18-20절 주님의 선교지상명령의 이론적인 부분을 묵상해 보았고 이번 글에서는 선교지상명령을 받은 우리가 직접 선교지에 나와 사역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점들을 실전 경험에 비추어 살펴 보고자 합니다.

1.

문자, 이론적으로만 보여지는 선교지상명령을 보면 그 지상명령은 다만 그 사역의 결실의 양과 소요될 시간(결실 성취의 규모, 결실의 때- 이 부분은 지금까지 같은 주제의 다른 이전의 글에서 언급했으므로 생략) 등을 제외하면 이론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에 다 잘 아름답게 이루어져야 하는 해피앤딩(당위적)으로 보여지며 그 이유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1)주님께서 먼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시고 보내시고(마28:18).

2)보내실 자는 아무나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주님과 함께 있으면서 주님으로부터 배우고 훈련받은 제자들이며(“내가 너희에게 가르친 모든 것을”)

3)가서 할 일들을 구체적으로 명시해 주셨고(다른 일에 시간 낭비 없이 본질을 잃지 않도록 – 이상 마28:29절)

4)주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그들과 항상 함께 해 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마28:20).

이상의 이유들을 보면, 한 마디로, 선교는 다 잘되어야 하고, 심지어는 선교할 수 있다(선교에 귀한 도구로서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바로 엄청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주님이 지금까지 직접 훈련해 오셨고, 원하시는 것이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로 축복해 주셨고, 심지어는 가서 할 일들조차 정확하게 방법에 명시되어 있어서 길 잃고 방황할 필요조차 없이(!) 그대로 순종하기만하면 되고 그러면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하며 지켜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는 저도 재론의 언급없이- “아멘^^”.

2.

그런데 막상 선교지에 도착하여 실전에서 이 원리대로 선교 하면서 영육간에 새롭게 깨닫고 보니 “무조건 다 (양, 질적으로) 일사천리식으로 잘되어야 되고 다 효과적이며 다 좋은 결실이 보장되어햐 한다”는 말은 실제에 있어서는 그렇게 믿고 나가 선교하는 당사자부터 먼저 우선 상당한 주의을 요하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좀 과장된 표현을 빌리자면 그렇게 선교가 양, 질적으로 다 잘되면서 가능한한 크게, 빨리 되어지기를(그것도 가능한한 우리가 기대하는 최단 시간내에) 기대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요망 사항일 뿐, 사실은 큰 착각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렇게 도와주시지 않기 때문도, 혹 선교사가 무능, 열심히 하지 않거나, 아니면 후원 교회(성도)들이 보내고 나서 열심히 후원하고 기도해 주지 않기 때문은 물론 아니고… 말을 바꾸어 말하면, 주님도 도우시고 선교사도 열심히 하고 후원교회도 최선 다해 열심히 기도하고 후원하고 있다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가 절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기대하는 사람(들)의 마음대로 되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주님께서 그렇게 할 능력도 없으시고 우리가 주님 말씀처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로 선포하고 항상 함께 하시며 인도하시는 은혜도 없기 때문도 아니라는 것을 포함하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선교 23년만에.. 이제 겨우 선교사로서는 좀 철도 들고^^ 깨닫고 보니.. 좀 역설이긴 하지만.. 선교는 오히려 생각대로 호락호락하게 잘 안되어야(전쟁도 치르고 대가도 지불하면서 나름대로 완벽하지 못해서 부득이한 실수도 없지 않고 해서.. 그래서 지연도 되면서 할지라도..) 오히려 정상이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제가 부정적이라 부정적인 면을 원하기에 드리는 말씀은 아닙니다. 오히려 저도 섯불리 이런 말을 하면 이런 말을 함으로 인해 제게 돌아올 부정적 인상이 뻔한데도.. 그런데도 도대체 왜 이런 말씀을 하느냐고요?
 
확신컨대, 그것들은 철저하게 숨겨져 있으며 또 인간적으로도 역설에 해당하는 점이 많고 또 선교의 진정한 주체는 주님이시고 우리는 그 분이 가르치고 인도하시는대로 순간순간 감사 순종하며 갈 뿐이기 때문입니다. 괜히 다 아는 얘기 뒷 북치는 감 없지 않지만.. 이 글 목적이 선교에 대한 최소한의 건전한 성경, 실제적 틀(framework)을 인간적으로 부정적으로 보이는 이 부분일지라도 짚어 보고 가기 위한 것이므로.. 최소한 이 글이 그런 부분에 이해에 작은 부분이나마 도움이 되기 바라는 심정입니다. 그 이유들을 다음와 같이 나누어 봅니다.

1) 인간 영혼 다루는 선교를 선교의 주체이신 주님께서 최대한 인격, 영적(주님의 방법으로)으로 하시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방법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주님께서 선교를 받을 피선교 대상자, 심지어는 선교하는 사람 등의 인격을 존중하시고 아직도 죄인 인간이 선교의 이런 과정들을 통해 그 분 앞에 돌아오도록 긍휼히 여기시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만일 주님이 인간을 기계나 동물 다루듯 하신다면 여전히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반역하는 교만한 대부분의 인간 죄인은 단번에 다 정죄 받고 말겠지요. 아마 단시간에 그런 선교 문닫고 끝나게 될 것입니다.

또 그렇다고 만일 심판이 두려워서 어쩔 수 없이 선교를 받는다면(그것이 전부라면) 그것은 선교의 영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우신 형상, 특히 죄인도 사랑하셔서 돌아오기 원하시며 그 죄인 하나가 돌아올 때 온 세상보다 더 기뻐하시는 주님의 인격적 특성의 긍정, 적극적인 본질 자체의 선하심과 위대함이 엄청나게 축소되어 오히려 반대로 선교를 부정적으로 만들고 두렵게 하는 것이겠지요(이전에 카톨릭교회, 특히 예수회 선교사들은 중남미에서 군대-그들의 칼을 앞세워 선교했지요). 그것은 하나님의 전체적인 선하심을 어떤 인간적인 방법으로 크게 왜곡하는 결과가 되게 한 것이므로.. 결단코, 이것은 일반적인 보통 죄보다 경시될 수 없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죄를 안짓는 완전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 여전히 하나님의 선하심의 진정한 크심, 위대하심을 크게 보지 못하고 무시하기 때문에 아직도 열려 있는 하나님의 귀한 복을 받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2) 영적인 일은 하루 아침에 결코 다 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구원을 위한 구원’ 식의(구원파, 예수파 - 이단) 선교를 원치 않으시고 구원 이후에도 계속 성숙하게 전인적으로 성장, 성숙하고 마지막으로는 다른 사람을 선교하는 선교사가 될 수 있도록 최종적인 재생산까지 하는, “일련의 유기체적 과정이 있는” 선교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상식적인 일이지만 영적 세계에도 분명 새로운 출생(신생)-어린이-청소년-장년 시절이 분명히 있는 유기체적특징의 성장, 성숙 과정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어느 것 하나라도 무시될 수 없는 다 소중한, 연단의 시간이 걸리면서라도 결국 다 있어야 할 단계들이고 같은 사람의, 다 소중한 영적 단계들입니다.

만일 아이를 낳아 놓기만 하고 그 후에는 나몰라라 하는 어머니가 있다면 그야말로 살인 이상의 죄악입니다. 그런 아이는 혹시 어떻게든 살아 남는다 해도 장차 사회에 큰 해를 끼치는 인물이 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육신의 어머니가 버린다면 다른 누구라도 그 버려진 신생아의 어머니 역할을 해야 하는데 알다시피 이 일은 누구에게나 결코 쉬운 일도 아니고 잘 최선을 다해 기르면서도 상당한 세월이 흐르고야 가능한 희생을 요하는 일입니다. 또 비록 자식을 육신적으로 버리지는 않았더라도 바로 가르치지 않았다면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신자-제자-사도로 그 단계를 생각해 봅니다. 신자로만 다 같은 인격을 그렇게 나누는 것이 무리인 것은 알지만 주님께서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교육이란 장에서 아무래도 선하고 좋은 목표로 배운 사람이 낫고 의미도 있다는 점에서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모든 신자가 후에 다 사도가 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한 인간 영혼을 구원하실 때는 그가 단순히 주일날 교회가서 예배드리는 것만 하는 주일성도가 아닌, 계속 제자와 사도로 성장하며 쓰임받는, 그렇게 다른 사람들 주님 앞에 쓰임 받도록 가르치는 일에 헌신하는 사람이 되도록 창조적이고 성숙한 영적 재생산을 원하시는 점을 생각해 보면 더 그렇습니다.

3) 또 주님은 “내가 너희에게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한 때 복음전도만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계속 그들 옆에서 삶으로 모범을 보이면서 지속적으로 “주님의 모든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 선교의 최종 목표입니다. 그러나.. 피선교지 사람들은(사람은 누구든지) 정말 이것을 가장 싫어 합니다. 적당히 가르치고 좋은 말만해주면 좋아하지만 그들을 가르치고 잘못된 점을 지적해 주기 시작하면 그렇게 하는 사람, 그런 과정 자체를 싫어하기 때문에 교회를 떠나거나, 그것을 비판하는 사람, 아니면 남아 있으면서 배우는 척하기는 하지만 가르치는 사람의 체면이나 다른 것을 보아 있어 주는 것 등으로 역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일단 쉽지 않게 되지요. 극단이긴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상상이 불가할 정도로.. 일단 많은 손길과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원하시는한 그것은 불가피하고 또 부득이한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4) 다음은 실질적으로 파송되는 선교사, 선교사 파송 교회가 인간(연약, 제한된, 특히 초임 선교사는 성경, 영성, 경험, 언어준비, 문화 이해 등에 있어서 잘 배우고 수련하고 잘못을 수정하는 기간이 필요하고 어떤 모양으로든 시행착오가 불가피함 – 예수님을 제외한 기타 인간은 누구든지 불완전함)이며 또 이런 준비에는 열심히 준비하면서도 불가피하게 세월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런 점을 잘 수용하고 개선해 가면 모르지만 그것이 싫어서 인내하지 못하고 다른 식으로 선교하고자 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본질에서 멀어지게 마련이고 세월이 가도 그런 선교는 장기적으로는 계속 겉돌게 되고 모래 위에 선 집처럼 비가 오고 풍파가 올 때 무너지게 되지요.

5) 다음은 각 선교지마다 선교의 부흥을 막는 고유의, 교묘하고 특수한 환경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전술한 2)항에 의거, 선교지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은 곧, 선교를 바로 하고 있지 않다는 뜻도 될 수 있습니다. 또 반대로, “선교가 너무 잘된다(?)”는 말도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선교가 단기간에 정말 너무 잘되면(무엇이 잘되는 것을 말하는 것인지부터 알아보아야 하지만) 그 지역은 이미 선교 대상지역(우선순위에서)에서 일단 제외해야 하겠지요. 만일 복음전도로 인한 대 부흥 추세(?) 말하는 것이면 그것도 감사하긴 하지만.. 그 후에 더 쉽다고 결코 말할 수 없는 양육(nurturing ministry)이 여전히 더 큰 과제로 남게 되는 것인데 그렇다면 말하는 사람이 그렇게 너무 단순하게 말하는 것은 선교에 대해 너무 모르거나, 아니면 너무나 주님께서 그 이후의 어려운 양육사역도 잘 해 주실 것을 믿는 믿음의 충일해서(?)든 둘 중의 하나겠지요. 하지만 저로서는 이 둘 다 문제있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선교에 대해 다만 선교의 주체되신 우리 주님께서 선교지에서말씀과 성령으로 선히 인도해 주시는 대로 하는 것일 것입니다. 분명히 주님은 선교지에서 우리와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하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모든 과정을 의미합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면서 모든 일을 허락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면서 우리는 그런 주님에 사랑과 동역하심, 선하심에 대하여 늘 감사하며 기쁨으로 순종해야 주님도 인도해 주시고 선교도 바로되면서 늘 기쁨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은근히 목표지향적(자기 위주)이기 때문에 그런 목표를 크게 잡으면 잡을수록 주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데도 그 부분을 마치 자신이 영적으로 거룩하고 실력이 있어서 될 수 있는 것처럼 과장하다가, 그것도 이왕이면 빨리 보여지게 수단 방법으로라도 크게 하려 하다가, 아니면 정말 주님 원하시는대로 원리, 원칙대로 바르게 선교하는 일이 너무나도 힘들게 보여서, 또 그렇게 하면 사람들의 이해도 못받고 고지식한(?) 사람으로 평가되고 나중에는 선교후원 마저 중단될 것이 두려워 그렇게 하면 좋은줄 알면서도.. 선교단체나 후원 단체가 원하는대로 해 주는 식으로.. 사상누각이 되고 정작 자신도 영적으로 넘어지고(backsliding) 망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꼭 그런 사람들이 나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이런 문제가 선교의 실제에 있어서 너무나 쉽게 일어날 수 있는 문제이기 떄문에 원리로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6) 끝으로 공중권세 잡고 마지막 때에 자신의 때가 얼마남지 않은 것을 아는 사단이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 온 세상을 헤메기 때문(그가 이 내용과 인간, 선교 상황 등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가장 효과적으로 교묘하게 방해하고 있음)입니다. 사단이 특히 하나님의 사역, 성도의 축복의 가장 핵심인 선교를 방해하고 공격하는 것은 당연지사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혹 사단으로부터(또는 세상으로부터) 시련이나 시험이 전혀 없는 것, 혹은 있어도 그것을 인간적으로 대하는 것도 역시 문제라 봅니다. 시련이나 시험이 전혀 없다면 그것은 천년왕국(계20), 아니면 새 하늘과 새 땅(계21장)에서나 가능한 일이지요. 시험과 고난, 그것은 분명히 있어야 하고 또 그것에 대해 그것을 참 신앙으로 극복하는 성도들의 인내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 최후 승리도 중요하지만 순간 순간마다 작은 일에서부터 전술한 선하신 목자이신 주님과의 교제와 순종할 수 있는 기회와 특권 자체를 감사하며 주님의 풍성함과 능력을 즐길 수 있는 선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주님을 바라볼 때 비로소 진정한 선교의 소망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주님은 대중과 조직과 부와 영광을 떠나 섬기고 마지막으로 자신을 모든 인류의 구원을 위해 버리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이상 말씀드린 내용들 외에도 기타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지만 너무 전문적이고 쉽게 글로 옮기기에는 좀 문제가 될 수도 없지 않은 부분들도 있을 수 있으므로 이 정도로 마침을 양해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