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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8-20 05:29
선교묵상 4 –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아”
 글쓴이 : Ezra
조회 : 3,190  
선교묵상 4 –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아”


선교묵상 주님의 “선교지상명령” 시리즈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지난 회에서는 “가라”에 대해 언급해 보았습니다. 다음 단계로 가기 전에 한 가지 먼저 분명히 해 두고자 하는 것은, 가서 그곳에서 죽고 산는다는 것이 결코 뭐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죽지 않고 들림받는 에녹이나 엘리야 같은 사람이 아닌 이상 때가 되면 어차피 죽게 마련입니다. 문제는 어던 삶은 살아 있어도 차라리 죽으니만 못한 삶도 없지 않다는 것입니다. 요는 살아 있는 동안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특별히 별도로 설명이 필요 없을 줄 믿습니다.

이번에는 마28:19절의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아”에 관해 나누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마28:18-20절에서 주님께서 “선교지상명령”을 받는 사람의 대상이 주님께서 지금까지 함께 하며 가르치고 훈련시켜온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그것이 실현 가능 하도록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시고 세계 만국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하고 제자를 세우고 주님으로부터 배운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사역을 할 때 그들과 “지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해 주셨음을 통해서 다음 사항들을 정리해 봅니다.

1.        모든 족속(ethnos)으로

어떤 성경에는 민족으로 번역되어 있지만 개인적으로 “족속(한글 개역-1962)” 개념이 마음에 듭니다. 헬라어에도 국가, 왕국(헬-basileia)들 개념이 아닌, 족속들(ethnos-복수)로 번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분명 국가개념과는 다르다 생각됩니다. 무엇보다 영적으로 “족속들” 이란 말은 유대인만이 아닌, 모든 이방인들을 가리킵니다. 즉, 국가나 영토 개념, 그 안에 사는 백성들 개념 보다는 영적으로 아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많은 이방인들을 가리킨다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선교에 적용하여 보면 더 의미가 있습니다. 아울러 19절 전체를 통해 다음과 같은 원리들을 알 수 있습니다.

1)        주님께서 결코 무조건 아무나 세우시지 않으신다. 누구나 될 수는 있지만 그 조건은 주님께서 “친히 함께 하시고 모범을 보이시며 말씀으로 가르치고 훈련시키신 자”를 세우신다.

2)        그리고 그들에게 “가라” 하신다. 보내실 때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신다.

3)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선교해야 할른지의 목적,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신다.

4)        사명수행 기간동안 세상 끝날까지 그와(그들과) 항상 함께 하신다는 것 등을 전제적으로 보증하신다. 그래서 선교가 가능해 진다.

이는 한 마디로, 주님이 친히 “선교의 주님”, 그 주님이 “선하신 목적을 위해”, “그 목적을 제자들이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친히 도우실 것을 보장해 주시는 좋으신 분”임을 보여 줍니다. 게다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시고”, “어떻게 무엇을 구체적으로 사역해야 할지를 분명하게 명시해 주시고” 그리고 “세상 끝날까지 항상 그들과 함께 있을 것”을 보장해 주시니 한 편, 주님의 이 선교지상명령이야말로 이 땅에 존재하는 어떤 일들 보다도 더 확실하게 이루어질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당연히 정상적인 선교는 최종적으로 아름답게 이루어져야 하는(이루어 질 수 밖에 없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만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하는 선교가 선교답게 아름답게 이루어지지 않는 다면(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보냄 받는 제자들(선교사, 증인들), 혹은 그들을 파송하고 돕는 선교기관(후원교회)들이 주님이 친히 보장하고 명시해 주신 말씀의 목적과 방법, 과정 등의 원리(상기한 4가지)대로 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거나, 혹 사역지에 잘 파송되어 나갔더라도 파송된 사람이 주님과의 기본적인 영적 관계를 무시, 자신의 영광을 도모, 인간 수단방법을 내세움, 다른 목적을 위해 함, 아니면 게을러서(?).. 등이라 생각됩니다. 또 다른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보내심이 주님의 뜻이고 주님이 항상 함께 하시며 인도하시는 분이기에 늘 주님께서 함께 하시고 도와 주실 것이므로 인내하며 믿고 충성하면 주 안에서 해결되지 못할 문제는 아무것도 없다 생각됩니다.

제목을 좀 벗어나긴 하지만 여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그것이 성취에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얼마나 많이 거둘지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선교 대상이 다양함(예, 공산주의자, 이슬람, 기타 다른 광신적 종교가 있는 지역, 미개한 곳, 문화 수준이 낮은 곳 등..) 환경이 다름(비슷한 지역이라도 사역이 전개되는 장소의 특이한 환경에 따라 또 상당히 다를 수 있음), 또는 선교사의 성경이해, 영적수준, 선교이해, 선교경험.. 등 기타 여러가지 요소들에 따라 다소 다를 수 있기 때문이리라 생각됩니다. 선교의 주체이신 우리 주님이 그것을 구체적으로 몰라서 언급하지 않으셨을 것은 물론 아니므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차제에 별도로 깊히 묵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중요한 것은, 다만 누가 선교의 대상이냐(모든 족속에게로 가라)는 것이고 또 그들을 어떻게(그들을 제자를 만들으라), 왜, 어떤 목표로(그들로 하여금 주님께서 가르친 말씀대로 살도록) 선교하느냐는 것입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나라(정치, 지형학적인) 개념이 아닌, 모든 족속(종족) 개념이기 때문에 예를 들어 같은 나라이지만 미국처럼 다인종 집단의 나라일 경우 각 인종별로 많은 특성별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각 인종마다 별도로 취급해야 할 것도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있는 멕시코도 물론 그렇습니다. 대부분은 서반아어를 사용하지만 많은 소수 부족들은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대화가 되지 않는 부족들도 있고 일반적으로 그들 대부분이 미전도 종족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나라가 같아도 다른 종족이면 언어, 문화, 기타 여러 면에서 많은 다른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같은 사람이 여러 종족 여러 문화권, 언어권을 맡는 다면 그만큼 현실성, 전문성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또 그 나라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아무리 높은 많은 비율로 전도 되었다해도 아직도 독특한 그룹이 복음조차 듣지 못하고 있는 곳이 있다면 그들에게도 선교사를 보내는 것도 주님의 지상선교명령에서 보여지는 의도라 생각됩니다. 이것은 사실 모든 나라에 선교사를 보내라는 것보다 훨씬 더 구체적인 선교의 명령입니다. 막16:15절 말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장소개념) 만민에게(족속개념)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는데 짧게 잘 요약된 표현이라 생각됩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물론 성경적으로 방법도 목적도 완전 잘못되었을 정도로 문제 있는 선교를 하고 있다면 예외겠지만 분명한 것은, 선교지상명령에서 주님은 “성과, 효과조차”도 말씀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1)        물론 “가는” 선교사에게 그가 하는 모든 것을 그대로 다 허용한다는 뜻은 이상에 전술한 내용들을 볼 때 아마 절대 아닐 것입니다.

2)        선교의 주체이신 주님께서 선교지에서 일어날 이런 이유에 의한 어떤 문제들이 일어날지에 대해 모르시거나 대책이 없어서도 결코(!) 아닐 것입니다.

3)        그렇다면 선교의 주체인신 주님께서 어떤 경우에도 이런 상황들을 인간 선교사보다 더 잘 아시고 구체적으로 훈련하시고 선히 인도하실 것이며 선교 정책과 방법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 자체가 주님께서 원하시고 하실 수 있는 것을 말씀 그대로 믿고 가는 것보다 결코 어떤 경우에도 더 정당화 될 수 없다는 뜻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역시 역설이겠지만, 사실 오늘날 많은 선교부들이 인간적인 수단 방법이 가미된 더 이상 주님의 순수한 구령과 제자훈련을 통한 재생산에 목표가 맞춰지지 않은 선교회들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심지어는 상당 수의 교회와 교단 선교부들이 선교에 대해 잘 안다고 크게 하면서도 본질은 제쳐놓고 오히려 어떤 다른 부분들을 더 강조하기 때문에 본질마저 구속, 또는 변질될 수 밖에 없는, 선교를 선교답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것도 사실 부인할 수 없는 부분이며 게다가 냄비근성(?)은 정말 조심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님께서는 그런 점들을 다 포함해서 이미 아시면서도.. “가라, 가서 모든 족속으로 선교하라(그 족속이 어떤 족속이든)”고 하신 것입니다.

사단도 열심히 사역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득이 먼저 질과 바른 방법을 추구하기 때문에 속도가 늦지만 자신의 때가 얼마남지 않은 것을 알고 있는 사단은 공중권세를 잡고 외적으로 사람들을 유혹해 가기 때문에 외형적으로만 보면 속도, 숫자, 규모, 횟수, 유혹적 흥미, 유물주의적 파워, 인간적 합리주의 측면의 성과 등 있에서는 상상 불가한 빠른 속도로 세속 사회 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종으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야하는 선교지는 이미 영적으로 이 사단이 장악한 선교지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오늘날은 마24장에서 말하는 성경적 종말 현상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원수는 자신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 온 땅을 헤메고 있습니다. 선교와 목회도 갈수록 어려워 질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 마지막 문이 닫히는 순간(인자가 올 때에 너희가 세상에서 믿는 자를 보겠느냐-눅18:7)이 되기 전에 나갈 사람들이 각 교회, 교단들로부터 구름같이 일어나고 모든 족속들에게 복음이 전해지기를 소원합니다. 그가 진정한 원수이고 그를 상대로한 영적 전쟁은 불가피합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에 사단의 방법대로 따라하다가는 본질을 잃고 비본질마저 그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노력만하다가, 그래서 잠시 선 줄로 알았다가 오히려 더 크게 망가뜨려 질 수 있습니다.


2.        제자로 삼아

다음은,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것입니다. 즉, 제자 삼는 것은 선교의 궁극적 목표이고 핵심입니다. 제자를 삼기 위해 세례를 주는 것이 필요하며 주님이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제자 삼는 일에 관점을 맞추는 것은 주님이 말씀도 그렇지만, 사실 제자가 아니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회 제자훈련반에서 일주에 한 번 이론적 강의만 받은 제자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참 제자이어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서 발견하는 제자의 특징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자신의 삶 따로, 주님 섬기는 삶 따로 (따로 국밥?)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의 삶을 버리고 전 인격적으로 주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닌, 주님이 말씀해 주시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대신하여 주님  나라와 그 나라의 의를 구하는 사람입니다(마6:33). 항상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교회만 가고 신자 명부에 등록된 것으로 끝나는 사람(성전뜰만 밟는 사람)이 아니라,
성소(말씀, 기도, 성령)와 지성소(중보, 선교)의 사역을 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구원받고 성도가 되는 것은 감사할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 가운데도 끝까지 교회 신자이면서 자신만, 자신의 가족만 돌보다가 가는 이기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는 결코 이웃과 세계를 품을 수 없는 이기적이고 무익한 삶입니다. 물론 구원은 최소한의 선교의 목표입니다. 그러나 전부는 아닙니다. 구원은 영적으로 태어난 갓난 아기와 같기 때문입니다. 갓난 아기는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을 잘 받아야 합니다. 젖만 물리고 가슴에 안아 준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라면 가르치고 훈련을 시켜서 언젠가는 선과 악을 구별하고 선을 택하며 대가를 지불하고 주님 가르쳐 주신 말씀대로 살도록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일은 어머니로 말하면 낳는 일보다 훨씬 더 어렵고 비싼 대가가 지불되어야 하는 대목이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 그러나 부득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만일 낳아 놓고 나몰라라하고 길 가에 버리는 어머니가 있다면 사실 살인보다 더 큰 죄입니다. 아이를 잘못기르면 사회의 악명 높은 사람이 되는 최악의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 아이를 잘 기르면 시대의 위대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전도의 목표, 제자의 목표는 이처럼 성소와 지성소 사역, 나아가서는 제사장의 나라의 역할을 하는 데에 있고 그 결과는 다시 다른 사람들을 이처럼 주님 가르쳐 주신 말씀으로 그렇게 하게 하도록 재생산(reproduction)하는데에 있습니다.

세례는 가장 공식적인 그 첫 걸음, 첫 출발입니다.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것은 다룰 내용이 많으므로 별도로 다음 호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꼭 다시 확인하고 싶은 것은, 그냥 전도만하고 교회에 와서 예수 믿게 하고 교인 명부에 등록하는 것 정도로 선교의 목표를 정하지 말라는 것을 아예 파송전부터 확실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선교는 얼마든지 단기간에 할 수 있는 그런 일종의.. 전도하고, 교회 짓고, 행사 크게하고., 구제, 의료사역하고.. 등의 하나의 사업(business-?)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필요하지 않고 나쁘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이 분명 전부가 아닌데.. 그걸을 전부처럼, 아니면 그 이상은 아예 계획도 없고 투자도 없는, 그래서는 결코 제자(지도자)는 나오지 않는, 식의 선교를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런 진정한 사람사역, 제자사역이 없는 교회는 죽은 교회로 생각됩니다. 아무리 행사가 많고 사람이 많이 모이고 헌금하고 예배드려도 같은 이유로 사람을 기르는 사역(제자사역 - 가르쳐 지키게 하는 사역)을 해야 살아있는 교회, 참 교회인 것입니다.

이런 사역을 하기 시작하면 갑자기 어려워지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고 좋아하는 말 대신에 자신들의 모든 인간적 결점이 들춰지고 수술되어야 하는 말씀 사역은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당장 드러나고 만져지는 것도 별로 없는(쉽지 않기 때문에 많지 않은) 것입니다.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힘든 사역입니다. 그러나 이 사역이 진정한 사역입니다. 단기선교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이 사역에 다리를 놓아주는 사역이 여러 이유들 중에 가장 의미있는 이유일 것입니다. 자신들은 세상을 구원했다고 하기를 원하고 그렇게 생각하기 싫어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이 그렇습니다. 비본질적인(secondary) 일들은 결국 본질적인 것을 위해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의 소망은 이들이 장차 잘 훈련받은 제자 지도자가 되어 이들의 사회가 다시 우리가 해 온 것처럼 계속 긍정, 생산적으로 재생산되어지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도 많고 또 구체적으로 증명되어야 하는 말도 많기 때문에 차제에 자연스럽게 차차 다루기로 하고 이 정도로 줄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