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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작성일 : 18-06-07 15:44
예수 믿고 쫄딱 망했어요!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916  
예수 믿고 쫄딱 망했어요!

이영우 (분당 우리교회 권사)

“예수 믿으면 복 받을 줄 알았는데… 웬걸요, 완전히 망하고 고생길이 시작 되더라고요.”
이영우 권사 (시니어 5여)는 순식간에 집 두 채가 날아갔다고 고백하며 인터뷰 문을 열었다.

<사업 망하고 얻은 것>
결혼 후 남편은 용산에서 채소 도매 사업을 크게 벌였다. 당시 그 귀하다는 전화기를 몇 대나 들여 놓을 정도였다. 그 큰 사업이 3년 만에 철저히 무너졌다. 갖고 있던 전 재산, 집 두 채를 모두 날렸다. 사면초가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했다. 결혼 몇 년 전에 하나님을 영접했고, 교회에서 총각 집사를 만나 꿈꾸던 세상 복이 다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법. 하나님께 매달려 간구했더니 하나님의 메시지를 얻었다. 내 능력, 내 재산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는 믿음! 상황은 그대로 암담했지만, 영안이 열리자 세상이 달리 보였다. 반전이었다. 성경 말씀을 붙잡고, 교만과 까칠함을 내려 놓았다. 삶의 소중한 터닝 포인트였다. 그러자 죽복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재물이 아닌 다른 곳에서…
“글쎄, 제가 우리 집안의 아브라함이래요. 믿음의 조상!” 무슨 말인가 했더니, 이 권사의 간절한 기도 응답으로 안 믿던 친정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하나님을 영접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권사는 친정을 통틀어 주님을 영접한 최초의 신자였다. 친정에 뿌려진 첫 씨앗이다. 간절한 기도는 2년 만에 첫 결실을 맺었다. 일본 사이비 종교에 빠져 있던 친정 어머니가 하나님 앞으로 나왔다. 그 다음은 동생들이었다. 그렇게 주님의 역사가 시작되자, 둑이 터진 것처럼 축복이 넘쳤다. 지금은 친정 식구 48명이 하나님을 열심히 믿고 있다. 선교사와 목회자까지 배출할 정도로…

<대장암 말기에 터진 통곡>
50대 초반, 위장이 몇 달 동안 계속 아팠다.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며 위장병을 치료했지만 잘 낫지 않았다. 정밀 검사를 하고, 청천벽력 같은 진단 결과를 받았다. 대장암 말기, 위장 근처에 혹 덩어리가 자리 잡았고, 점점 전이되고 있었다.
수술을 앞둔 어느 새벽, 병상에서 무릎 꿇고 간절히 기도했다. 다른 말은 나오지 않았따. 딱 한 마디만 계속 반복했다. “주님, 너무 아픕니다.”
또렷한 주님의 음성이 들렸다. “내가 너를 치료하여 주겠다.” 이 권사는 병상 애래로 내려와 소리쳤다. “예수님 만세!”
그러나 수술 후 항암 치료는 가혹했다. 8개월 동안 지속된 30번의 항암치료는 너무 힘들었다.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의사는 20번을 더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날로 금식 기도원에 들어가 하나님께 매달렸다. “하나님, 어떡하죠?” 묻고 또 물었다.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이 들렸다. “네 믿음이 어디 있느냐?”
‘너를 치료해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100% 신뢰하지 못한 것을 깨달은 이 권사는 그 자리에서 통곡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한 부끄러움과 치유 확신에 대한 기쁨이 교차하면서 울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즉시 금식기도원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치유 확신을 가졌기에 병원에는 다시 가지 않았다. 남편도 동의했다. 15년이 지났지만 아무 일 없다. 하나님께서 치료하신 것이다.

<호스피스 봉사를 하는 제가 행복한 사람입니다>
10년 전, 우리 교회에 등록하고 호스피스 봉사 교육을 받았다. 대장암 경험을 살려 호스피스 훈련에 자원한 것이다. 봉사는 쉽지 않았다. 처음 몇 달간은 환자들의 고통이 전이되며 함께 아플 정도였다. 그야말로 ‘함께 우는’ 봉사의 시작이었다. 지금은 호스피스 병상 봉사는 물론 집에서 암치료를 받는 환자 방문까지 봉사의 영역을 넓혔다. 일주일에 2~3일은 호스피스 봉사를 한다.
이 권사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죽음을 몇 개월 앞둔 암환자들이 “저도 권사님처럼 봉사하고 싶어요”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한다는 것이다. 병상에 누워 인생을 돌아보며 하는 후회 가운데 남을 섬기는 봉사를 하지 못한 후회가 크기 때문이다. 해서 “다시 건강을 찾는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봉사”라는 고백도 자주 듣는 다. 전도폭발 훈련까지 받은 이 권사는 전도에 열심이다. 호스피스 병원은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 인간의 본질과 직면하는 곳이다. 가식 없이, 진짜 맨 얼굴로, 그만큼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하나님을 온전히 영접한다. 호스피스 봉사에 전도까지 열심인 이 권사는 그래서 감사하며 말한다. “호스피스 봉사를 하는 제가 행복한 사람입니다.”

<노숙인 교회 봉사로 이미 시작한 일만 성도 파송 운동>
이 권사의 봉사와 섬김은 우리 교회 울타리에만 머물지 않는다. 3년 전부터는 시댁 식구들과 함께 노숙인 교회를 열어 섬기고 있다. 이수역 근처에 위치한 길벗교회다. 담임목사는 이 권사의 큰시숙인 김희성 목사. 김 목사는 서울신학대학 교수를 은퇴하자마자 노숙인을 섬기기 시작했다. 편한 노후를 물리치고 예수님 닮은 삶을 살겠다는 선언이었다. 큰시숙 부부와 큰시누이 부부, 이 권사 부부까지 6명이 시작했다.
길벗교회 안에서 주님의 일하심을 또렷이 경험한다. 작년에 노숙인 50명이 목표였는데 60명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다. 올해는 100명이 목표다. 양적 성장과 함께 질적 결실도 맺고 있다. 노숙인 가운데 2명이 집사로 섬기고, 십일조를 드리는 노숙인도 있다.
길벗교회의 슬로건은 가족공동체다. 노숙인을 가족처럼 섬긴다. 이 권사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예배 후 점심을 같이 먹는데, 절대로 노숙인들을 줄 세우지 않아요. 집에서 식사할 때 줄서지 않잖아요. 자리에 앉아 있으면 식사를 갖다 줍니다. 한 식구니까요.” 이 권사는 그런 섬김을 통해 단순 봉사가 아니라 인간 존중의 회복과 치유, 나아가 가정과 직장의 회복까지 이루어지도록 노력 중이라고 덧붙였다. 그런 설명을 들으니 길벗교회가 왜 교회 내에 노숙인을 위한 샤워 시설을 마련하고, 교회 바깥에는 따뜻이 지낼 방을 얻었는지 수긍이 갔다.
이 권사의 주일은 분주하다. 새벽에 인터넷으로 우리 교회 예배를 드린다. 그후 길벗교회에 가서 예배와 노숙인을 위한 봉사에 매진한다. 눈이 번쩍 뜨였다. 아! 바로 이것이 분당우리교회가 추구하는 일만 성도 파송 운동이지 않은가. 대형 교회에 안주하려는 고착화를 깨고, 밖으로 나가 섬기는 것!

약속된 인터뷰 시간이 금세 흘러갔다. 삶과 신앙 고백이 롤러코스터처럼 빨리 지나갔다. 취재 수첩을 닫는데 이 권사가 한 마디 했다. “아직 8명 남았습니다.” 무슨 말인지 물었다. “우리 집안에 아직 안 믿는 사람 말이에요. 제게 남은 소망이 두 가지예요. 계속 봉사하는 것, 그리고 남은 8명이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글_김현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