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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작성일 : 17-04-20 15:54
전미자 집사님 간증문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44  
비엔나 감리교회 홈페이지에 있던 간증문인데 참 은혜가 되어 올려봅니다. 
비엔나의 일식당 AKAKIKO 의 사장님이신 전미자 집사님의 간증문 입니다.

 
저는 이렇게 사람 앞에서 간증이라는 것을 처음 해 봐요.
흔히 간증이라고 하면 뭔가 보통 사람들은 체험도 못하는 영적 신비라든가 기적을 기대 하실 텐데,
저는 그런 것이 없어요.
그냥 제가 살아온 얘기를 할께요.

여러분이 마네킹을 늘 보실 텐데 어쩌면 인생은 그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겉보기에는 맵시 있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숍 안에서 보는 마네킹의 뒷모습은 시치미 바늘로 여기저기 꽂아놓아 흉하지요.
그것처럼 인생은 보이지 않는 부분의 고통이 훨씬 더 심한 것 같습니다.
저에게 지금까지 가장 힘들었던 일은, 나슈막의 노천시장에서 채소를 팔 때가 아니었어요.
또 새벽 3시에 낡은 승합차에 물건을 잔뜩 싣고 운전할 때 커브 길에서 짐 무게 때문에 운전대가 돌아가지 않아
 옆에 있던 터어키 직원이 같이 돌려야 했는데, 그때도 고생스럽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간호사로 일 할 때 저보다 두 배나 되는 환자를 부축하는 경우엔, 젖 먹던 힘까지 다짜내야 했지요. 하지만 그때도 그렇게 고통스럽지는 않았어요.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순간은, 마음 깊은 곳에서 외로움이 솟아날 때였습니다.
낯선 외국에서 살아내야 하는데 주변에는 아무 돕는 사람도 없고, 가진 것 없이 혼자 이겨내야 하는 그 외로움이 가장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그런 경우를 겪어 보셨겠지만, 놀 일도 없고 재미있는 일도 없을 때 할 수 없이 뭔가를 하는 수가 있는데 의외로 그것이 구원의 통로가 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어쩌다 어느 날 한영 성경을 읽게 됐는데, 우리 말로도 읽었지만 영어로도 계속 읽었어요.
그런데 처음 영어로 읽을 때는 이해도 안 되고, 별 느낌도 없었지만, 계속 서 너 번을 읽어나갈 때 뭔가 속에서 기쁨이 솟구쳐 오르고 말씀이 내 영혼 속으로 빨려 들어 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머니가 어릴 때 그렇게 열심히 읽으셨던 성경의 단 맛을 그제서야 안 거지요.
지금도 제가 잊지 못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한영성경을 주신 목사님께서 딤후2:20~21 말씀을 성경 앞 쪽에 써 주셨는데,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그 말씀이 저를 일어나게 했답니다.
비록 제가 질그릇일지는 몰라도 그 나름대로 깨끗하면 더 자주 쓰이고 친히 쓰일 것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것을 깨닫자 모든 것이 아무 것도 아니고, 중요하지도 않더군요.
자유가 생기고 어떻게 쓰이든지 자주, 친하게 쓰이면 그것으로 만족하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요 저는 지금도 질그릇이랍니다.
저는 그런 질그릇으로 쓰임 받는다는 게 너무 감사하답니다.
               
저의 사업 얘기는 뒤에 잠깐 하도록 하구요, 사실 저를 이만큼이라도 만들어주었던 것은 다른 것이었답니다.
이 얘기는 여러분께도 너무 중요해서 꼭 하고 싶었습니다.
책은 사람이 만들지요?
그런데 책이 사람을 만들기도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어느 때부턴가 성경과 함께 여러 종류의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 책들이 제게 참 많은 것을 가져다 주었어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것 자체가 우리의 양식인데, 일반 서적들은 또 다른 세상살이에 필요한 처세와 지혜, 그리고 영감을 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여러 젊은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것도 독서예요.
어쨌거나 책을 손에서 놓지 마세요.
여러분은 아직 젊으니까 저보다 훨씬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엔 별 표시가 안 나지만 책 읽는 것은 언젠가는 본전 이상의 것을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여러분!
제가 잘 웃는데 그 웃는 버릇은 제가 처음 이곳에 와서 독일어를 못 알아 들을 때, 그냥 웃음으로 넘겨 버리다 보니 그게 습관처럼 되어 버렸어요.
나중에 보니 그게 대인관계에서도 좋지만 사업에도 플러스로 작용하게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손님들께 웃으니 직원들도 따라 웃게 되고, 우리 모든 영업장에 그런 웃음이 늘 있으니까 그게 좋은 인상을 주었나 봅니다.
하실 수 있으면 많이 웃으세요.
제겐 그 웃음이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꿔 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언젠가는 그 밝고 웃는 얼굴이 좋은 일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있는데 여러분들께서도 이 말이 어떤말인지 아시지요?
정말 언제 어떻게 내 인생이 바뀔 지 모릅니다.
지금은 실패 같지만 나중엔 그게 가장 큰 성공의 발판이 될 수도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물론 거기엔 오랜 인내심이 필요하더군요.
겉보기엔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일도 어느 만큼은 참고 이겨내는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그런 경험을 절실히 한 적이 있습니다.
작년 4월에 오스트리아의 피셔 대통령이 우리 나라를 순방하게 되었을 때, 대사님의 추천으로 제가 대통령을 수행해서 한국에 다녀 온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제가 묵상집을 읽고 있는데 대통령께서 제 옆 자리에 앉으시더니 무슨 책을 읽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면서 대화가 시작되었는데, 어느 순간 피셔 대통령께서 제게 던진 그 한 마디에 제 30년 간의 오스트리아에서의 아픔이 모두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그 분이 무슨 대단한 말씀 하신 것도 아니고 그저 한 마디의 질문이었습니다.
“그 동안 빈에서의 생활이 많이 힘드셨지요?”

사람은 그런 것 같습니다.
무슨 대단한 일을 해 주지 않아도 바로 옆에서 말 한 마디 따뜻하게 해 주면 그것으로 그 동안의 괴로움이 다 사라지는 것 같아요.
여러분들께서도 그렇게 다른 사람을 향해서 따뜻한 말 한마디 던져줄 수 있는 여유를 갖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두서없이 말씀을 드렸지요?
사실 여러분들이 제일 듣고 싶으셨던 이야기는 사업 이야기일 텐데 저는 두렵습니다.
왜냐면 제가 한 게 없고 모두 하나님이 하셨는데, 제가 어쩌니 저쩌니 말을 하면 혹 제가 잘 나서 이렇게 회사를 키워놓은 것으로 되기 쉽거든요.
그래서 무척 조심스러운데, 그렇더라도 솔직하게 말씀 드릴께요.

처음에 AKAKIKO를 시작할 때는 자리 20석에 직원 4명을 두고 시작을 했습니다.
제가 제대로 요식업에 관해 배운 것도 없었고, 또 상황이 좋을 때 시작한 것도 아니었어요.
초창기 때 가장 힘들었던 일이 생각나는데, 막 낳은 아기를 집에 두고 하루 14~15시간 일을 하고 나면 젖이 불어 아파서 견딜 수 없었어요.
그래도 오픈 하자마자 손님이 밀리기 시작하는데 도저히 감당이 안 될 정도였어요.
그래서 꼭 6개월 만에 다른 곳에 분점을 내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렇게 시작한 우리 AKAKIKO 레스토랑이 지금은 빈과 린쯔에 12개의 체인점을 두고, 직원 170명에, 배달 기사 50명 해서 모두 200명 이상의 직원을 두게 되었습니다.
매출액을 정확하게 따져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연 2000만 유로 내외일 테니까 우리 원화로 환산하면 350억 내외가 되겠군요.
한참 영업점이 물이 오를 때는 손님들이 너무 많아 “이젠 좀 그만 오지” 했던 때도 있었는데 제가 곧바로 회개했답니다.
제가 해마다 십일조를 많이 드리게 해 달라고 했는데 그렇게 이루어 주셨어요.
그런데도 어느 순간엔 감사를 잊어버리는 불충을 하나님께 저질렀어요.
그러면 또 주님께 용서를 빌고 다시 일어났지요.

지금 저희 회사는 모든 들여오는 물품대금을 즉석에서 현금으로 지불하고 있답니다.
우리도 손님들께 즉석에서 음식값을 현금으로 받는데 우리에게 물품을 대주는 분들께도 그렇게 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리 회사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전혀 빚이 없이 왔습니다.
그리고 우리 회사의 주거래은행은 우리 AKAKIKO의 신용도를 모든 사업소들 중 최 상위 등급에 놓고 있어요.
지난 10년 동안 우리 회사는 단 한 번도 마이너스를 만든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빚 없이 모든 대금을 현금으로 지불한다는 원칙은 앞으로도 계속 지켜질 것입니다.

저는 요즘도 12개의 분점들을 계속해서 다니고 있어요.
물론 어느 영업장을 가든 제가 하는 일은 똑같습니다.
직원들과 똑같이 일을 하지요.
손님을 받고 음식을 나르고 때로는 설거지도 돕습니다.
감사한 것은 각 분점에 있는 직원들이 저를 보면 모두 친한 누님이나 언니처럼 대해 준다는 거예요.
저 역시도 종업원을 종업원으로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해요.
모두들 돈 벌어서 고향으로 부치는 착한 젊은이들인데 함께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우리 종업원들은 중국이나 베트남, 필리핀, 몽고 등  제 3국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슨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제가 초창기때 이곳 오스트리아에서 버텨내는 데 너무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렇게 저와 비슷한 처지인 동양의 제 3국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입니다.
지난 연말에는 오스트리아 정부가 투명한 기업과 납세의무를 성실히 한 회사에 주는 훈장도 받게 되었습니다.
훈장 자체가 기뻤던 게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정직하고 바르게 경영하려고 한 노력이 인정받은 것 같아 기뻤습니다.

저는 지금 이 시간까지 돈을 벌고 그것으로 뭔가 계속 다른 일을 벌려볼 계획으로 일한 적은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처음 이곳 오스트리아에는 저 밖에 없었지만 지금 AKAKIKO 각 분점에 저의 친척들이 많이 있답니다. 
그게 제게는 너무나 큰 기쁨입니다.
특별히 조카들이 자리 잡고 고모(또는 이모)를 이해해 주고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면 뿌듯하답니다.         

제가 이곳에 정착한지도 어언 30년이 되어 가네요.
돌이켜 보면 과거란 게 늘 아름답거나 즐거울 수는 없어요.
그러나 살아계신 주님이 나의 피난처가 되시고 내 앞에서 먼저 발걸음을 떼신다는 믿음이 제게는 있어요. 여태까지 그것을 경험하면서 살아왔구요.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 두서없이 이런 저런 말씀을 드렸는데, 정말 이 모든 말씀의 결론은 제가 한 일은 제가 한 게 아니었어요. 모두 하나님이 하셨어요.
저같이 별 잘 난 게 없는 사람도 이렇게 해 냈는데 여러분은 더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여러분!
이곳에서의 생활이 힘들고 외롭지요?
여러분의 그 힘들고 외로운 것 제가 너무나 잘 이해해요.
하지만 참아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권하고 싶은 말씀은 4 L 입니다.
열심히 살고(실천하고) (Live),
열심히 사랑하고 (Love),
웃고 (Laugh)
배우라 (Learn)   

저는 지금도 주님께서 제게 주신 꿈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답니다.
젊으신 여러분들께서도 큰 꿈을 품고 주님께 간구하시면서 언젠가는 그 뜻을 반드시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